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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5 칼의 노래의 시작

2009/03/25 짜라일기

『칼의 노래』 의 시작

바다의 기별 P. 130
나는 대학에서 처음으로 영시를 배웠습니다. 내가 배운 영시는 19세기의 낭만주의 시였습니다. 그때의 시는 위즈위스, 셸리, 바이런, 키츠, 더 내려가면 예이츠, 더 위로 올라가면 알렉산더 포프인데, 이런 시인들의 문학을 배웠습니다. 영국 낭만주의라는 것이죠. 낭만주의 문학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인간의 세상은 신의 섭리와 자연의 조화로 가득 차 있는 것이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소망은 반드시 미래에 실현이 되는 것이다, 이런 행복한 세계관을 19세기의 그 아름다운 영어로 써놓은 시였죠. 우리는 그것을 외우면서 자랐습니다. 그 시들은 낙관적이고 조화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문학이었지만 인간의 모든 소망이 미래에 실현된다는 것을 예언하는 점에서 매우 혁명적인 문학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들은 배고프고 억눌린 청년들의 영혼을 그야말로 아편처럼 매혹했습니다. 나는 그때 배운 시인들의 시를 거의 대부분 지금도 외울 수가 있습니다. 나는 영어를 매우 잘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도서관에 갔다가 『난중일기』라는 책을 읽었어요. 영문과 2학년 2학기 방학할 무렵이었고 스물두 살 무렵이었죠. 그 책은 노산 이은산 선생이 번역한 것인데, 앞장과 뒷장이 다 떨어져나가서 걸레처럼 된 책이었습니다. 그 책이 우연히 도서관에 굴러다녔어요. 그 책을 봤더니, 거기에는 희망이나 행복이나 미래가 전혀 없었어요. 이순신이라는 사내가 감당한 것은 그야말로 정말만이 가득 찬 현실이더군요. 전쟁이 났는데 임금은 의주로 도망갔고 적은 이순신보다 수백 배 강하고 부하 놈들은 싸움이 벌어지면 뒤에서 도망을 가고 임금은 온갖 트집을 잡아서 이순신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 절망의 시대에서 헛된 희망을 설치하고 그 헛된 희망을 꿈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절망의 시대를 절망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통과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거기 그려져 있었습니다. 『난중일기』는 장군의 육필기록이기 때문에, 우리가 영원히 후손에게 전해야 될 소중한 문화재입니다. 그러나 『난중일기』는 거기에 무슨 인생의 심오한 철리가 들어 있거나 우리가 외워야 할 아름다운 문구가 있거나 놀라운 수사학이나 인식론이나 철학이 담겨 있는 책은 아닙니다. 그 책은 뭐냐 하면 매일매일 전쟁을 수행하는 한 지휘관이 자기네 병영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진중일지에 불과한 책입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대학에서 교재로 채택할 만한 책은 못되는 것이죠. 그러나 그 책은, 내 젊은 영혼을 뒤흔들었습니다. 난 그 책을 읽은 다음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젊은이의 아주 난폭한 생각이었겠죠.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 낭만주의 문학이라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원대한 이상을 표현한 문학이지만 이것이 인간의 현실 전체를 말하기에는 매우 빈약하구나. 한 반쪽 정도밖에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숙한 젊은이의 난폭한 생각은 그런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겠지요, 젊은이들은. 나는 『난중일기』를 읽은 그때부터 학교가 싫어졌어요. 2학년 2학기 때. 학교가, 영문학이 싫어졌고, 데모로 지고 새는 이 어수선한 학교가 싫어져서, 결국 학교를 때려치워 버렸어요. 마침 집에 돈도 없어서 등록금을 낼 수도 없었지요. 이것이 내가 받은 교육의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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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7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더 나이를 먹고 내가 나의 언어를 확실히 장학할 수 있는 어느 날 나는 이 『난중일기』와 이순신이 처한 절망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되겠구나, 말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것들을 느꼈죠. 그것이 소설이 될지, 시가 될지, 드라마가 될지, 나는 알 수가 없었어요. 젊은이들의 소망이라는 것은 그렇게 막연한 것이죠. 막연하고도 간절한 것이죠. 그 『난중일기』의 생각은 그 후에 내 마음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난중일기』를 처음 읽던 20대 초반부터 27년이 지난 어느 날, 돌연 연필을 들어 『칼의 노래』라는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소설을 두 달 만에 다 써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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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 소설은 나의 내부에서 내 삶의 슬픔과 고통과 더불어 잘 숙성되어 있었던 것이겠죠. 내가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이순신의 그 리더십이나 그의 덕성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하는 그의 리얼리스트 정신이었습니다.


바다의 기별 P. 140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해서 남해안으로 내려왔더니 그 두 달 전에 원균의 함대가 칠천량에서 대패해서 조선 수군은 전멸하고 남해에서 조선 수군의 깨진 배와 송장이 떠돌아다니고 그 쓰레기로 덮인 바다에 봄이 오는 풍경을 묘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에서 버려진 섬이란 사람들이 다 도망가고 빈 섬이란 뜻으로, 거기 꽃이 피었다는 거예요.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 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 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소설은 몽매해집니다. 문장 하나한마ㅏ다 의미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를 구별해서 끌고 나가는 그런 전략이 있어야만 내가 원하고자 하는 문장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런 문장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읽었습니다. 거기 보면 그 분이 군인이기 때문에 사실에 정확하게 입각한 군인의 언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인이 아니면 쓸 수가 없는 문장입니다. 군소리가 없고, 무인들이 큰 칼을 한 번 휘둘러서 사태를 정리해 버리는 듯 이 한 번으로 끝내버리는 문장을 이순신은 쓰고 있더군요. 그것이 나한테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재미가 없는 문장입니다. 아무런 수사적 장치가 없는 문장. 그러나 나한테 그것은 놀라운 문장이었습니다. 암담한 패전 소식이 육지로부터 전해오는 날, 이순신은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고 씁니다. 아, 좋죠.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이것은 죽이는 문장입니다. 슬프고 비통하고 곡을 하며 땅을 치고 울고불며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혼자 앉아 있었다는 그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것이죠. 거기에 무슨 형용사와 수사학을 동원해서 수다를 떨어본들,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를 당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전연 수사학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강력한 주어와 동사의 세계죠. 내가 사랑하는 주어와 동사의 세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분은 사실에 입각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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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또 일기에다, "오늘 어떤 녀석이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고 썼습니다. 기막히지요.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 그게 목을 베었다는 거지요. 그것이 그가 글을 쓰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완강한 사실에 입각하는 것이죠.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 그 머리를 베어서 장대에 끼워서 성 앞에 걸었다. 그래놓고 그 다음 문장을 계속 써요. "저녁 때 바람이 불었다." 해군들은 바람 부는 게 가장 큰 문제죠. 배들을 바닷가에 나란히 자동차 세우듯이 대놓고 있는데 바람이 불면 배들이 서로 흔들려서 배들끼리 부닥칩니다. 바람이 불면 해군은 배를 끌어서 뭍 위로 올려놔야 배가 부숴지지 않죠. "저녁 때 바람이 불었다. 자는 병사들을 깨워서 물가로 내려 보내서 배를 끌어올리라고 지시했다"고 씁니다. 이 부하 놈 하나를 죽였다는 것 그게 뭐 별거 아니라는 듯이 써버립니다. 수사, 형용사, 부사가 하나도 안 나오고 밋밋하고 재미가 없지만, 부하를 죽였다는 문장과 바람이 불었다는 문장 사이에서 그의 문장은 삼엄한 긴장에 도달합니다. 그것은 아주 전압이 높은 문장입니다. 볼트가 높은 고압 전류가 흐르는 문장입니다. 만지면 전기가 올 것처럼 찌르찌르하는 문장이죠. 문과대학에서는 그런 문장을 안 가르치더군요. 문과대학에서는 셰익스피어, 밀턴, 위즈위스를 배웠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문장이었지만 내개 읽은 『난중일기』에는 그보다 더 좋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저는 장군님께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분이 돌아가신 날이 되면 꼭 노량에 가서 소주 한 병을 놓고 절을 하고 돌아옵니다.


김훈의 소설은 어쩌면 이순신의 일기를 닮았는가 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칼의 노래』중.

문장하나를 놓고 며칠 동안 머릿속으로 다듬는다.
마음은 소용돌이치고, 치고받고 치달으며 격렬하고 끝없는 싸움을 한다.
그러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 쓴다.
그것은 조사의 문제가 아닌, 여백에 담기는 의미에 대한 고찰이다.

김훈은 꾸밈없고 담담한 글을 쓴다.
"오늘 어떤 녀석이 군율을 어겼기로 베었다. / 저녁 때 바람이 불었다."
『난중일기』중.

이 두 문장사이엔 무거운 침묵이 깔려있다.
그것이 작가 김훈에게는 충격이었다.
그 충격과 놀람을 그는 아직도 가슴깊이, 뼛속까지 기억하고 있다.


김훈에게 이순신은 따라잡을 수 없는 스승이고, 『난중일기』는 완벽한 교제이다.
짜라에게도 김훈은 그러하다.


나는 『난중일기』를 읽은 그때부터 학교가 싫어졌어요. 2학년 2학기 때. 학교가, 영문학이 싫어졌고, 데모로 지고 새는 이 어수선한 학교가 싫어져서, 결국 학교를 때려치워 버렸어요.

나는 작가 김훈이 아닌 고뇌하는 한 인간을 마주하고 있다.
그의 고뇌는 짜라에게 이질적이다.
다만 어렴풋이나마 옷자락의 펄럭임으로 짐작할 뿐이다.


소주한잔을 사이에 두고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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