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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3 죽음에 대한 통찰

2010/09/13
짜라일기: 죽음에 대한 통찰

며칠 전 미용실에 갔다.
파마하고 3달 만인 거 같다.
짜라는 미용실엘 자주 가지 않는다.
하나의 콤플렉스라고도 할 수 있다.
머리칼이 덥수룩해 지고, 좀 답답해 질 때쯤에나 가게 된다.
지금 다니는 미용실은 벌써 5년 동안이나 꾸준히 다니고 있다.
일 년에 4 ~ 5번 정도 많으면 6번 정도이니 시간은 길어도 많이 만난 건 아니다.
그래도 꾸준함은 힘을 가지는지, 나름 미용실 아줌마와 친하게 지낸다.


미용실 갈 생각으로 일찍 퇴근을 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금요일이다.
하루 종일 퍼 붓다시피 비가 오다 잠깐 숨고르기를 하다를 반복했다.
하늘은 오늘 아주 작정을 했다.
사실 이주 내내 비가 많이 왔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많이 온 날이다.

버스에 자리 잡고 앉아,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미용실 전화번호를 누른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오늘 일찍 문 닫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떡할까 고민한다.
벌써 문을 닫았을까? 아니면 잠깐 자리를 비운 걸까? 헛걸음 하는 거면 비도 많이 오고하는데, 일단 귀찮아 질 탠데, 그래도 가보는 게 좋겠다.
생각 속을 해매고 있을 즈음 미용실에서 전화가 왔다.
30분 후에 도착할거 같다고 하니, 오라고 한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차가 막힌다.
차가 막혀서 갈아타는 차가 20분 째 오지 않는다.
평소 5분도 되기 전에 오던 차가 이리 늦게 오니, 비도 오는데 기분이 꿀꿀해 진다.
30분이라고 시간 이야길 했는데, 이런…….


미용실 앞에 도착하니,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손님 하나 없는 가게 안에 덩그러니 아줌마 혼자 TV를 보고 있다.
늦은 게 미안해서 큰소리로 너스레를 떤다.
머리칼을 자르고 손질하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짜라가 좋아하는 책을 화제로 삼았다.
요즘 어떤 책 읽느냐는 질문에 요즘은 책 많이 못 읽는다고 했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한 거 같은데, 그때보다 좀 더 가라앉은 목소리다.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고, 드라이어로 남은 물기를 털어낸다.

뜬금없이 '인생이 참 별거 아닌 거 가터.'라고 던지듯 이야기 한다.
감정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 건조한 말투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엉거주춤 아줌마를 마주본다.
작년에 남편이 급성 백혈병에 걸렸는데, 이식을 받아서 완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달 전인지 갑자기 제발해서 지금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삶에 미련이 참 많은 사람이야.'라고 슬픔 없이 건조하지만 약간의 안타까움을 담아 이야기 한다.
짜라는 아직도 감을 잡지 못했다.
누구 이야길 하는 건지?
'아시는 분이 걸린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아니. 우리 남편'이라고 당연한 듯 말한다.
그러고는 주문처럼 '인생이 참 별거 아닌 것 가터.' 한다.
남이야기 하듯 하는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에, '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장탄식을 흘린다.
요즘 저녁마다 병원에 다니느라 시간이 없다고 한다.
'얼마나 되었어요?'라는 물음에
'백혈병이니 오래는 못살겠지?'
'거기다 급성이니 좀 더 짧을 거고, 6개월도 힘들 거야.'
라고 담담히 이야기 한다.

다정하고 따듯한 마음을 가진 분인데, 가족의 죽음 앞에서 초연함을 보이니 조금 어울리지 않는 듯 느껴진다.

'삶에 미련이 참 많은 사람이야.'
'인생이 참 별거 아닌 거 가터.'

라는 이 두 문장이 무겁게 다가온다.
부러 커피 한잔을 타 달라고 부탁을 하고, 몇마다를 더 건넸다.
아이들은 가까운 친척집에 맡겼고, 가게 보느라 바쁘지만 시간 나는 대로 대중교통으로 병원을 다녀온다고 한다.

그리고 아줌마의 얼굴을 찬찬히 보니, 예쁘게만 보이던 얼굴에 화장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우산을 받쳐 들고 빗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비는 모든 소리를 지우고, 지나가는 여운만을 남긴다.

죽음이란 아픈 기억일 탠데, 그 죽음을 한 골목 앞에 두고 예고된 낭보 앞에 의연히 덤덤히 말을 던지는 그녀를 보며, 무수한 상념에 빠져든다.
아무나 한태 그렇게 말할 것 같진 않은데, 짜라가 원래 별난 놈이어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어제 먹은 된장찌개 맛이 썩 좋진 않더라 하는 듯이 이야기 하는지도 모르겠다.
짜라는 의외로 여린 놈이라, 그런 생각만으로도 목이 매우고 울먹이게 된다.
조금만 슬픈 생각을 해도 감정이 몰입되어 쉽게 감정에 젖어든다.
한번은 그런 짜라가 신기해 이정도 감수성이면, 연기로 대성했을 탠데 진작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혼자 궁시렁 거린 적도 있다.

그녀 앞에서 덤덤함을 가장하며, 조그맣게 슬픈 맞장구를 친다.
무거운 발걸음을 낚아채는 빗줄기 사이를 사뿐사뿐 걸어간다.
눈을 감고 생각한다.
그 아픔을
그 눈물을
그 슬픔을
그 고통을

그 추억을
그리고 남겨진 자들을…….


뭐라고 위로의 문자라도 몇 자 적어 보낼까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한참을
한참 동안을…….
한참 동안을 망설이다
그만둔다.
마음은 전해지겠지만,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녀의 덤덤함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짜라가 떠오른다.
그런 슬픔을 견디는 덤덤함이 열륜 인지도 모른다.


"아옹다옹해 봐야 인생 별거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