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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30 한달에 9권 읽기

2010/01/30
짜라일기: 한달에 9권 읽기
독서일기 - 책읽기를 생각하다.

1월엔 책을 10권 읽었다.
10일에 3권 읽기니 한권 초과 달성 했다.
(올해의 목표는 한해동안 105권 읽기이다.)
목표보다 한권 더 읽었으니, 목표에 한발 더 다가간 셈이다.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일반적으론 책을 읽으면 좋다고 들 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실천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읽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은 책을 읽은 목적은 무엇일까?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주로 훌륭하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 다고 한다.
그리고 많이 읽기를 권장한다.
자신이 책을 많이 읽었고, 그래서 성공했다.
그들은 책이 스스로를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성공하는 방법을 전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타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책읽기를 즐기지 않으며, 더하여 책 읽기를 싫어한다.
재미도 없고, 시간은 잘 가지 않고 졸리기만 하다.

그에 비하면 짜라는 행복한 편에 속한다.
물론 책을 읽으면 졸음이 올 때가 많긴 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즐겁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사랑과 행복이 샘솟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열정과 의지가 고양된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욕심을 채워 갈 수 있고, 그러면서 조금씩 닮아간다.
책을 읽는 목적은 어떤 숭고하고, 지적인, 최고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나,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한 나로 다가가는 행위이다.
어떤 경우는 허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 '나'스스로 가지고 있었으나 단지 인식하지 못함으로 '없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이미 가지고 있었으며, 더 이상의 욕망은 무의미 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깨닫기도 한다.

책을 읽는 다는 행위는 나를 닦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한다.
어느 정도는 불가에서 스님들이 하듯 도를 닦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알면 알수록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고, 타인을 존중하게 되고, 타인에 의해 흔들리는 나를 다잡을 수 있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주최적인 삶을 향유 할 수 있는 인격을 수양하게 된다.
공존하는 법과, 흔들리지 않는 법.
한쪽 뺨을 맞고, 다른 쪽 뺨을 내줄 정도로 무아의 경지까지는 가지 않겠지만, 한쪽 뺨을 맞고, 그 분노를 폭발 시키지 않고 참고 견디며 용서 할 수 있는 자아를 형성 할 수는 있다.


가끔은 책을 통해 아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한번은 제인구달이 쓴 "희망의 밥상"을 읽었다.
이 책에는 온갖 좋지 않은 먹거리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거의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음식들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특히 육류의 경우는 먹어봐야 우리의 몸에 아무 도움도 안 될 뿐더러, 몸을 상하게 한다고 한다.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어떤 심오한 탐구나, 의학적 지식이나, 철학적 의미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다.
단순한 논리에서 출발해 독자들에게 단순한 몇 단계의 사실만을 주지시킴으로 그런 결론을 도출해 내고 공감을 얻고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양치를 하거나, 세수를 할 때 많은 물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샤워를 하며 엄청난 양의 물을 버리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다.
회사 식당에서 나오는 고기반찬을 보면, 엄청난 양의 항생제를 투여해 대량으로 사육되고, 어머니의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그래서 생의 즐거움을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체 오로지 도축되어지기 위해 사육되어진 고기가 내 밥상에 올라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을 알았으니 이제부턴 나쁘다고 생각되는 몸에 해로운 것들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공감이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짜라는 88년도에 책읽기를 배웠다.
92년도에 처음으로 책을 읽었다.
98년도부터 많은 양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독서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자라지만, 짜라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책을 읽었고, 대학생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동시대의 같은 나이 또래의 다른 사람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책을 읽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상대적으로 10배 이상의 책을 읽는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짜라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일찍 시작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시작한다는 것은 승부에서 진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조금 늦게 출발 한 것에 지나지 않다.
빨리 시작하는 것보다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스스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진정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다섯 살 때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뛰어난 사람을 키워 내려면 조기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은 뛰어난 천재를 찬미한다.
그러나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는지 에는 의문이 남는다.
인생이라는 긴-여행에서 상대적으로 더 빨리 뛰어남을 나타내고, 성공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만인이 부러워하는 삶을 영위해 간다면 듣기에 행복한 인생이다.
그러나 스스로 만족되고 행복한 인생인지는 그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짜라의 눈에 비친 모차르트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트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연주를 다녔다.
1762년에 뮌헨을 시작으로 3년 반 동안 아버지를 따라 유럽 전역을 떠돌며 연주를 다녔다.
한번은 모차르트가 알아 누운 적이 있는데, 아버지는 수입이 줄어들까 걱정을 했다.
18세기 중반 궁정 음악가이자 뛰어난 음악 교육자였던 레오폴트는 아들에게 교육자로서 더 없이 훌륭했고, 자신을 능가하는 뛰어난 제자를 길러 내었지만, 혈육의 정은 나누지 못한 듯하다.

짜라는 나의 자식이 뛰어난 자질을 일찍 부터 키워주기 보다는 인생의 다양함을 즐길 수 있는 기본적 소양과 타인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인간성을 길러 주고 싶다.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더없이 기쁘겠지만, 그렇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살 수만 있어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 같다.

지금 읽고 있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의 네 가지 요소를 이야기 한다.
배려, 책임, 존경, 지식
상대를 배려하고, 표현되었거나 표현되지 않은 것들에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존경하며, 상대를 알고자 하는 지적 욕구를 실천하는 것이 사랑이다.
언젠가 만나가 될 자식에게 이와 같은 사랑으로 긴-여행의 즐거움을 전해주고 싶다.

놀이터에서 어린 아이들이 아장아장 뛰어노는 것처럼,
인생즐거움이다.

책은 짜라에게 이 즐거움 들을 일깨워 준다.

2010/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