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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여수에서 수원으로

2008/08/16 여수에서 수원으로

"여수에서 생긴 일"에 이어지는 이야기…….

기차시간까지 15분정도 여유가 있어, "고스톱"을 샀다.
친구는 담배를 한 개비 물고 불을 붙였고, 짜라는 비스킷을 하나가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예전에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것이었는데, 지금은 접하는 모든 것이 익숙한 것들이다.
이 비스킷도 10년 전에 먹어본 그 맛이다.
오랜만에 먹는 과자 맛은 맛있었다.

여수가 기차의 종착역이었다.
생각해 보니, 오는 추석에 하루 시간 내어 여수에 들렀다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누나집이 사천이라 여수까지는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을 듯 했다.
여수에서 기차타고 가면, 차 막힐 걱정도 덜 수 있으니 일석 이조 인 것도 같다.

8번 열차 3, 4번 좌석에 배정받았다.
객차의 맨 끝이자, 하행 선일 때는 맨 앞에서 열차를 끄는 차였다.
여수역에선 8번 열차에 아무도 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옆에 있는 좌석을 뒤로 돌려서 넓은 공간을 확보한 다음 고스톱을 쳤다.
처음엔 내가 몇 번 이겼지만, 나중엔 계속 친구가 이겼다.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이 칸에도 들어와 의자를 원위치 시키고 자리로 돌아왔다.
이동식 상점에서 맥주 두 캔과 안주를 사서 마셨다.
그리고 또 고스톱을 쳤고, 상점이 두 번째로 왔을 때 맥주를 한 캔씩 더 마셨다.
술기운이 몸에 퍼지니 스르르 잠이 왔고, 그렇게 수원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잠에 취해 있었다.
친구는 넌 어쩜 그렇게 한 번도 안 깨고 잘 자냐며, 자기는 한잠도 못 잤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기분은 좋아 보였다.
11시 반쯤 도착해 777번 버스를 타고 수원의 짜라 아지트로 돌아왔다.
대략 27시간 동안의 숨 가쁜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부터 또 다른 하루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에는 후배 혼자서 스도쿠 게임에 열중해 있었다.
이제야 스도쿠의 참맛을 알겠다면, 푹 빠져있었다.
우리는 오면서 봐둔, 새로 생긴 당구장으로 향했다.

만석공원 정문 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15보쯤 걸어 왼쪽을 보면 당구장이 보인다.
처음 가는 당구장인데, 주인아저씨 얼굴이 낯익다.
예전에 가던 당구장 주인이었었나? 하면서 어색하게 고갯짓 인사를 한다.
후배 녀석도 여긴 처음인데 주인아저씨에게 아는 체를 한다.
몇 마디 섭섭하단 이야기를 한 듯하다.

당구를 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집근처 스무 발 거리에 슈퍼마켓이 있는데, 거기 주인이었다.
후배에게 그 말을 했더니, 그렇다고 한다.
슈퍼 그만두고 심심해서 시작한 사업인 듯하다.^^;

약 두 시간 가량 당구를 치고, 피곤한 몸으로 아지트로 돌아오는 길에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사들고 왔다.
3시쯤 이었을 것이다.
닭을 뜯으며, 고스톱을 시작했다.
고스톱은 3인이 정규 인원 이기 때문에 3명이 해야 가장 재밌다.

허리가 아파 더 이상 칠 수 없을 때 까지 고스톱을 쳤다.
이기는 사람이 100 ~ 200원씩 기부금을 적립했다.
고스톱이 끝날 즘엔 8천 원가량이 모였다.
닭 값을 치르기엔 4천원 모자랐지만, 생각보다 많이 모였다.
7시 반까지 쳤으니 어림잡아 5시간을 쳤다.

친구는 어제부터 종일 놀았으니 집에 가서 좀 쉬어야 갰다고 했다.
버스정류장에 바래다주는 길에 해장국집이 열려 있는걸 보고, 아침밥을 같이 먹었다.
회사 근처에 "그 집" 이라는 뼈 해장국 집이 있는데, 오랜 전통과 맛을 자랑 하는 집인데, 특히 엄청난 양을 주어서 다 먹어본 적이 딱한 번 있었다.
지금 들어온 해장국 집도 그에 맞먹는 양을 자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먹다보니 그걸 다 먹어버렸다.
친구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 했는데, 배가 터질 것 같아, 잠들 수가 없었다.
훌라후프를 돌리며 책을 읽었다.
10분쯤 돌렸을까 배부른 상태로 훌라후프를 돌리니 배가 아파왔다.
앉아서 1시간가량 책을 보다, 눈꺼풀이 무거워져 그대로 잠이 들었다.
무지하게 방탕한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갔다.
그때 시간이 오전 10시쯤 이었을 것이다.
이걸 탈선이라고 하면 탈선이겠지?ㅋㅋ
사람은 가끔 이렇게 탈선 할 필요가 있다.
항상 반듯하면 그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을 것이다.

너무 반듯 하려 애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