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08/08/21 독서일기 - 남한산성, 빈 서판

2008/08/21 독서일기 - 남한산성, 빈 서판

그제 남한산성을 다 읽었다.
남한산성은 처참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처참하게 끝난다.
그러면서도 여느 책에서 처럼 여운을 남길 줄 알았지만,
그냥 담담하게 끝맺고 있다.

마지막에 암시적으로 또 다른 시작을 이야기 하긴 하지만…….


오늘은 집에 와 "빈 서판" 2부를 읽었다.
2부에선 "빈 서판"을 부정하면서도 조금 차있는 빈 서판(엉성한 빈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들을 열거 하고 있다.
저자는 그들의 주장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2부의 마지막에 3부 광고를 한 페이지에 걸쳐 하고 있다.
거기서 2부의 주장들을 아주 적대 적으로 서술하며, 3부에서 무엇이 잘못인지 하나씩 집어보겠다고 다짐하고 한다.
스티븐 핑거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가 조금은 의외이긴 하지만, 그의 강력한 적대 감정은 사실 2부의 주장을 했던 인물들이 비하면 아주 온건한 편에 속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깐 3부의 도입부를 봤는데, 2부에서 "사회 생물학"자들을 공격했던 그들의 무기를 요약해서 나열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다르다면 억압과 차별이 정당화될 것이다.
  2. 사람들이 선척적으로 부도덕하다면 인간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은 무익할 것이다.
  3. 사람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자유 의지는 신화가 될 것이고 더 이상 사람들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할 것이다.
  4. 사람이 생물학적 법칙의 산물이라면 삶의 의미와 목적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곤 각 항목들에 하나의 장을 할애해 그런 주장의 우매함을 지적 하겠다고 선전 포고를 하고 있다.

짜라는 스티븐 핑거의 반대편에 서있다.
사실 이분법 적으로 너는 어느 편이냐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게 말하겠지만,
진실은 어느 쪽도 아니다.
빈 서판 쪽에 무개중심을 두겠지만, 그렇다고 "사회 생물학"이나 사람은 유전적으로 프로그램 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짜라 안에서 양쪽 의견이 타협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마도 시간은 이런 중립 상태를 한쪽의 압승으로 끌고 갈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 두개의 이론을 계승하는 새로운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 시킬 지도 모른다.
세상은 항상 이분법 적으로 어느 쪽이 맞으면 어느 쪽이 틀린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것 같진 않다.
마치 짜라가 박쥐처럼 보일지도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렇게 보인다면 박쥐가 맞을 것이다.

사람이 얄팍하게나마 빈 서판을 가지지 않는다면, 짜라가 지금 가지고 있는 가치 판단 기준이 크게 흔들릴 것이다.
내가 했으면 다른 사람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 했으면 나 또한 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마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것 또한 이정한다.
고로 나도 그 처럼 할 수 있지만, 그 처럼 잘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이 사이에 사람의 주관이 개입되면, 그 곳에서 바이러스처럼 카오스가 자라나는 것이다.

가치 판단 기준이 흔들리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시킬 때, 그 결과를 기대하기란 참으로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인내력이 부족하다거나, 좀 더 노력했으면 되었을 탠데 라는 말을 할 수 없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3,4,5 장에서 스티븐 핑거는 짜라의 이런 걱정들을 한방에 날려 버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