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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08/12/16 오지탐험: 마른하늘에 날벼락

2008/12/16
오지탐험: 마른하늘에 날벼락

짜라의 오토바이 유럽여행
프랑스 파리, 31일째

어제 무리한 것도 있고 해서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으로 나온 빵을 먹고, 어디를 갈까 생각한다.
파리에 왔으니, 에펠탑은 봐야겠지?

1000KM에 한 번씩 오토바이 엔진오일을 갈아 주어야한다.
벌써 1200KM를 달렸으니 갈긴 갈아야지.
주위에 엔진오일 파는 곳을 물어보고, 혼자서 갈기 위해 필요한 공구를 사려고 한다.
그 와중에 민박집 아저씨 아시는 분이 오셨다.
그분이 오토바이 타고 왔냐며 신기하게 생각하신다.
엔진오일을 갈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하니, 엔진오일 주입뚜껑을 열어 뚜껑에 달린 막대에 오일 상태를 보더니, 이만하면 그냥 충전만 해줘도 되겠다 하신다.
그리고는 시동한번 걸어보라고 하신다.
이상하게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어제 12시간동안 타고 오면서 수십 번도 더 걸었다, 꼈다 한 시동인데 왜 걸리지 않는 건지.
보통 아침에 시동 걸면 잘 안 걸리는 경우가 있긴 있었다.
그래서 여러 번 시도해 보려는데, 아저씨가 고장 난거 같다고 하시면서 점화플러그에 연결된 선을 뽑아서 뭔가를 확인 하더니, 이상하다고 한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오토바이를 분해하기 시작한다.
결국 '고압증폭기'라는 부품에 문제가 있다고 하시며, 이 부품을 한번 구해보라고 하신다.
시간을 들여 수고해 주셔서 고맙긴 한데, 몇 번 더 시도해 보면 시동이 걸릴 것 만 같은데 분해해 버려서 조금 당황스럽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고장이면 큰일이다.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아저씨도 자동차 쪽은 잘 알지만, 오토바이 부품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하신다.
근처에 '하레이'전문점에 있으니 그곳에 가보라고 한다.
그게 뭐냐고 하니, 그것도 모르면서 오토바이 타냐고 하신다.
혹시 '할리 데이비슨'아니냐고 하니까 그렇단다.
그걸 '하레이'라고 읽는 게 맞는 건가?

오토바이가 20년도 넘은 거라 부품이 없지 싶지만, 일단 해보는데 까지는 해보기로 한다.
'할리 데이비슨' 전문점에서 물으니, '스즈키' 전문점 위치를 알려준다.
그곳에 가서 부품을 찾으니 이번엔 '혼다' 전문점을 알려 준다.
가는 길에 중고오토바이 판매점이 있어서 또 부품을 물어보지만, 모른다며 혼다 매장에 가보라고 한다.
어렵게 '혼다' 전문점에 갔더니, 문이 닫혀있다.
시간은 12:30.
12시에서 14시까지 점심시간이라고 한다.
프랑스도, 독일과 비슷하게 점심시간이 길다.
유럽은 전부 그런지도 모르겠다.
결국 민박집에 돌아왔다가, 시간 맞춰 다시 찾아간다.

직원에게 '고압 증폭기'부품을 보여주며 있냐고 물어본다.
오토바이 모델을 CB400N 이라고 알려준다.
뭔가 열심히 찾는 거 같더니, 구글에서 CB400N을 쳐서 사진을 검색한다.
그걸 가지고 뭘 어쩔 건지…….
한참을 시간을 끌고 난 후, 자기들은 완제품을 취급하지 낮게 부품은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곳을 아느냐고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한다.
가지고 온 부품에 이상이 있는지만 확인해 달라고 하니, 그것도 할 수 없다며, 오토바이를 가져오면 그건 테스트 해봐 주겠단다.
난감하다.
지금 상황으로 봐선, 가지고 와도 별 뾰족한 수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치닫고 말았다.
이젠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내일 오토바이를 원상태로 돌려놓고, 다시 한 번 시동을 걸어보고 그래도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그때는 포기해야겠다.

그냥 파리 몇 군데 구경한 후 비행기타고 이탈리아로 가서 며칠 쉬다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수밖에.
이 상태로 계속 여행을 한다는 건 너무 큰 스트레스다.
결국 이렇게 삐거덕 거리기만 하던 여행이 끝나는가?

혹시 엔진오일이 부족해 시동이 걸리지 않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돈 낭비 일 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오일을해 보충해 보기로 한다.


세익스피어 엔 컴퍼니
올해 초에 『파리의 고서점』이란 책을 읽었다.
그 책에 '세익스피어 엔 컴퍼니'가 소개되어 있다.
책을 읽고, 기회가 되면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생각을 했다.
이번에 예기치 않게 기회가 왔다.
오토바이 문제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하루 날 잡아서 그곳이나 보고 와야겠다.
그나마 위안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작성: 2008/12/16
편집: 2010/07/21


더하는 말

그날 상황이 눈에 선하다.
점심때 찾아간 혼다 매장엔 문이 잠겨 있었다.
처음엔 무작정 기다릴까 하다가, 다른 문이 있나 가게 주위를 오락가락 한다.
혹시나 안에 사람이 있을까 해서 유리벽에 바짝 붙어서 안을 들여다.
다행이 안에 사람이 앉아서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유리벽을 두드려 시선을 끌었다.
의아한 시선으로 짜라를 쳐다본다.
손질 발짓해가며 문을 열어달라고 한다.
그랬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다른 쪽 벽면을 가리킨다.
그곳으로 가보니 조그맣게 적혀있는 점심시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12:00 ~ 14:00

결국 점심시간이니 점심시간 후에 찾아오라고 하는 것 같다.
유럽은 대단하다.
손님이 밖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도 태연한 나라.

돌아오는 길에 기운이 쭉 빠지며 몸이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가게 찾아가는 길도 몰라 한참을 헤맸는데 돌아가는 길도 쉽지는 않았다.

가는 길에 어떤 사람이 길쭉한 빵을 종이가방에 넣어 안고 간다.
영화에서 몇 번 봤던 장면이다.
길쭉하고 딱딱한 빵.
한번 먹어볼까 생각을 하다, 그 사람이 조금 전에 나선 문으로 들어간다.
손가락질로 아까 봤던 것과 똑같이 생긴 길쭉한 빵을 사들고 나온다.
엄청나가 딱딱하다.
이게 무슨 빵이야! 돌이지.
베도 고프지 않고 입맛도 없었지만, 반을 뚝 잘라 당연한 것처럼 입으로 가져가 씹는다.
입천정이 다 까질 것 같다.
힘들여 베어 물고 꾸역꾸역 씹어 넘긴다.


신기하게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벌써 19개월이나 지난 이야기인데,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렇게 여행기를 남겨 놓으니 길지 않은 글만으로도 그때의 상황을 그림 그리듯 떠올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그 때의 '혼다'매장을 그리라고 한다면 앞에서 보는 것처럼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실력이 형편없어서 다른 사람이 알아볼지는 불문에 부쳐야 갰지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