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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08/12/26 오지탐험: 두 번째 고장

2008/12/26
오지탐험: 두 번째 고장

짜라의 오토바이 유럽여행
프랑스 니스, 41일째

오늘은 바쁘게 움직일 계획을 세운다.
오전에 깐느에 들렀다가, 모나코에 가서 점심을 먹고 3시쯤 이탈리아 제노바로 향하기로 한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오토바이 시동을 거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전번에도 그러더니 또 문제를 일으킨다.
아마도 비가 오고나면, 특정 부품에 이상이 생기는 것 같다.
습도가 내려가면 다시 시동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또다시 이런 상황에 빠지고 보니, 그나마 남아있던 에너지가 모조리 소진된 기분이다.
이젠 정말 포기해야 할 때인 듯하다.
내일 한 번 더 시동을 걸어보고, 그래도 움직이지 않으면 번호판을 때가지고 이탈리아로 가서 해지신청을 해야겠다.
번호판 해지는 그렇다 쳐도, 오토바이를 팔거나 폐기해야 하는데, 그것도 난감하다.
여기는 외국인이 경영하는 호스텔이라 판매를 부탁 할 수도 없다.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잠시 앉아있다.
불현듯 뭐라도 먹어야 갰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먹어서 푼다고 하던데, 짜라는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다.
보통은 이럴 때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도서관에서 상념에 잠기곤 했었다.
가까운 상점에 가서, 빵과 소시지, 와인, 과자 매론 등 먹거리들을 사가지고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와인 병을 떨어뜨려 사고를 친다.
호스텔 관리하시는 할머니가 나오셔서 깨진 병을 치워주신다.

이것저것 되는데도 마구 먹는다.
멜론도 먹으려 했는데, 배가 부르다.
밖은 날씨가 무척 좋다.
나가서 기분전환이라도 해야 하나?
누가 중고 오토바이로 여행을 한다고 하면, 적극 말리고 싶다.
사람이든 기계든 날씨가 궂으면 이상을 일으키는 것 같다.

혹시라도 내일 시동이 걸리면, 그대로 플로렌스까지 달려가야지.
그곳에서 민박집에 부탁해 오토바이를 팔든 처리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리라.


작성: 2008/12/26
편집: 2010/08/13


더하는 말

충격이었다.
두 번째 고장을 확인하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는 마음을 보며.
바이크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해, 어떻게 손 써 볼 수도 없는 내가 너무 무능하게 생각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자고 다짐을 한다.
기분전환도 할 겸 남들 하는 양 따라 먹거리로 기분을 환기시키려 한다.
여러 가지를 사가지고 숙소 정문에 이른다.
손에 들었던 와인 병을 겨드랑이에 끼고 열쇠를 꺼내 열쇠구멍에 넣고 돌리고, 다시 닫히려는 문을 발로 살짝 밀어 공간을 만들고 몸으로 부딪혀 밀고 들어간다.
그러던 순간, 정확히 말하면 열쇠를 돌리고 발로 미는 그 찰나의 순간에 병이 겨드랑이에서 스르륵 흘러 떨어진다.
그 장면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다가왔다.
와인 병이 떨어지는 궤적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고, 떨어져서 깨진 파편들이 바닥에 어떻게 흩어질지가 뉴런들의 전기 자극에 의해 하나씩 튀는 핏방울의 범람과 빛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조각들 까지.
그 찰나의 시간에 떨어지는 포도주병을 발로 밀어 운동방향을 수직 낙하에서 수평 이동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가했음에도 바닥과 발이 동시에 닫으며, 병은 무너져 내렸고, 내용물들을 한 번에 부체처럼 호를 그리며 펼쳐 놓았다.

관리인 할머니께 거듭거듭 사죄를 하고, 청소하시는걸 어설프게 돕다가 4층이었는지 숙소로 돌아왔다.
다시 와인을 살까 갈등을 했는데, 오며가며 마주치게 될 할머니 뵐 낯이 없어 관두고 있는 것만으로 먹기로 했다.
이러니 기분전환 하려던 시도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 상황에서도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마음속으로 또다시 되뇐다.

햇살은 눈비수고,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이 상큼한 그날은 그렇게 우울함으로 번뇌의 늪을 해매이며 다음 일정들을 두서없이 떠올린다.
그 안타까움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