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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08/12/28 오지탐험: 다시 이탈리아로

2008/12/28
오지탐험: 다시 이탈리아로

제 3장 여행을 하는 이유?
유럽여행, 프랑스 니스, 43일째

너무 일찍 잠들어 그런지, 새벽부터 잠이 깨었다.
10시 기차라 8시쯤부터 준비하면 될 것이다.
6시부터 뒤척거리며, 선잠을 잔다.


08:00
짐을 챙겨놓고, 어제 사놓은 빵으로 아침을 때운다.
이젠 모든 게 익숙한 느낌이다.
짐 싸는 것도 훨씬 빨라졌고, 아침에 빵을 먹는 것도 익숙한 일상처럼 받아들인다.
여행을 포기한 지금이 오히려 여행자의 기본이 된 듯 한 생각이 든다.
어쩌면 지금이 진짜 여행인지도 모른다.

09:00
역에서 밀라노행 기차를 확인한다.
전광판에는 10시에 출발하는 밀라노행 기차편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통 틀어 밀라노행 열차는 없다.
10분쯤 기다려 봐도 상황이 변하지 않아, 어떻게 된 일인지 안내에게 물어본다.
프랑스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시간을 두고 두 번, 세 번 물어본다.
여전히 마찬가지다.
이제 20분도 체 남지 않았다.
조바심을 치고 있는 중에 다른 사람들도 역시 나처럼 조바심치는 모습이 보인다.
모두들 밀라노행 티켓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중 프랑스어가 되는 여행자가 안내에게 물어보고 움직이는 게 보인다.
그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밀라노 직행은 없고, 벤띠체(Vinticille)에서 한번 갈아타야 했다.
기차표에 바꿔 타는 열차를 적어줬으면 좋았을 것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 해야 했다.
그나마 차편을 놓치지 않아 다행이다.

기차를 탄 내내 혹시나 잘못 탄 게 아닌가 조마조마 하다, 밀라노행 기차를 갈아타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다.
3시 도착예정이니, 갈아타고도 4시간 정도 시간이 걸린다.

뭘 할까?
밀라노 관광정보를 살필까?
아니면 일기를 쓸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잠이나 잘까?

무언갈 많이 얻으려고 하면, 조바심만 늘고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담담한 지금이 오히려 여행하기에 더욱 좋은 상황인 듯하다.
내가 무었을 원했든, 무었을 바랐든 그것은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가 느끼고 경험하고,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들이 내가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라고 외면해 버린다면, 난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태니까…….


기차를 타고 창밖으로 스치우는 배경들을 바라본다.
나는 모든 것들을 잠깐씩 스쳐 지나갈 뿐 어느 것도 붙잡아 관찰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것을 지나가는 대로 내버려 둘 뿐이다.
왠지 지금부터가 진짜 여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모든 욕심을 버려야만 여행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다시 남은 날짜에 맞춰 일정을 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비틀거리며 걸어온 여행은 어디쯤에서 끝날까.
벌써 여러 번 여행이 끝날 거라, 마음으로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다시 계속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모든 걸 포기한 지금도 여행을 계속해야할 이유가 날 찾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있으면서도, 너무도 깊숙이 꼭꼭 숨어 있어 나조차도 알지 못한다.


여행은 나에게 모든 욕심을 버리라고 한다.
지금 나는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도 여행은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한다.
내 가진 모든 것 들을…….
그때면 진정 내가 여행을 떠오나온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하나?


작성: 2008/12/28
편집: 2010/08/18


더하는 말

그릇의 비유가 떠오른다.
내 그릇에 무엇인가를 가득히 채우고 있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채울 수 없다.
그릇을 비워야만, 그래야만 새로운 것들을 채울 수 있다.
여행은 짜라에게 계속 비우라고 이야기 한다.
욕심을 버려라, 기대를 버려라, 그리고 마음을 열어라.

여행을 포기하고 비행기 표를 바꿔 귀국을 생각했었다.
몇 번을 고민하고, 포기를 생각했는데, 막상 실행에 옮기려 하면 잠들었던 아쉬움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는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잡기 힘들다면서, 지금을 최대한 즐기라고 한다.
그렇게 운명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지금 이 상황이 더없이 훌륭한 듯 느껴진다.
어제까지만 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행이 지긋지긋하고 온 세상이 분노로 폭발할 것 같은 기분으로 가득 찬 듯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너머의 여행을 생각하고, 또 그 너머의 너머의 너머의 …… 너머의 여행을 자꾸만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
버릴 수 있다는 게 대단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버리지 못하고 뭔가를 자꾸 붙들려 버둥거리고 발버둥 쳤던 것만 같다.
지금 이 순간도 다 버릴 순 없다.
언젠가 다 버릴 수 있는 그런 경지에 짜라가 도달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