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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0 수원 독서모임: The Ghost

2009/01/20
수원 독서모임

드디어 프레젠테이션이 있는 날이다.
거진 두 달간 삽질에 삽질은 거듭한 결과 지난주에 한 가닥 빛을 보았다.
아직 프로젝트가 끝난 건 아니다.
아직도 한참 멀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고비를 넘었다는 것이, 마치 따듯한 햇살을 마주한 느낌이다.

발표는 40분정도로 예상한 시간에 근접했고, 질문 답변 시간도 좋았다.
템포조절에 실패한 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은 발표였다고 자평해 본다.
질답시간에 몇 가지 질문, 의견, 지적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너무 방어적으로 답변에 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이 있었다.
기술자의 관점에선 가장 중요한 문제를 냉철하게 잡아낸 질문이다.
그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답을 엇지 못했다.
"정말 훌륭한 지적입니다."
라고 운을 띠웠으면 좋으련만,
짜라는 그런 언급은 없이 그 부분에 대한 고찰이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이런 부분에서 막히더라 라는 결과론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다른 분의 의견도 있었는데, 그것도 정말 좋은 지적이었다.
그러나 역시 현실적인 문제를 이유로, 좋은 관점임에도 결과론 적인 답변으로 마무리 지었다.
어쩌면, 그 속에서 좀 더 나은 대안이,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현실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어떤 생각이 나왔을지도 모르는데…….
짜라의 방어적인 태도가, 어쩌면 새로운 대안이 나올 수 있는 출구를 막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만 꼬리를 문다.


수원 독서모임이 있는 날인데, 보통 세미나가 끝나고 회식이 있나보다.
눈치를 살핀다.
다행이 팀장님이 퇴근시간 즈음에 인사를 건네고 가신다.
마음 놓고 독서모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ㅎㅎ


나름 늦은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도착해보니 벌써 네 분이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핀란드 교육'에 대해 화제를 삼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책은 '고스트 라이터' 바로 대필작가의 이야기 이다.
책을 읽은 지 한 달 하고도 열흘은 지난 듯하다.
그래서 책 내용이 어렴풋하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짜여진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는 그런 책은 아닌데, 천천히 긴 호흡으로 읽어 내려가는데도 무척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마지막의 반전은 강한 충격을 주진 않는다.
그런데, 마치 파노라마처럼 앞의 사건들이 재구성 되는 모습이, 마치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모두 다시 풀고 하나씩 다시 채워 가는 듯 엉뚱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정치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그 속에서 배후 세력의 모습이 얼핏 비친다.
처음 책을 선정할 때는 그런 고려가 없었지만, 그런 이야기 속의 장치들이 독서모임에서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불어넣어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책속의 주인공인 대필작가는 책의 도입부에서 '대필작가'에 대한 자부심과 확고한 직업의 논리를 이야기 한다.
대필작가는 이러해야 하고, 프로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그러나 책의 결말 부분에 가서, 그 사람은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방금 꿈에서 깬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전에 자신이 말했던 확고한 신념은 전복되었고, 그 자리를 새로운 신념에게 내어주고 있다.
3달, 아니 한 달 정도 되는 소설 속 시간 흐름동안 너무나 급진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뒤집는 그를 보면서,
죽음과도 맞바꿀 만큼 확고한 신념들,
타협할 수 없을 것 같은 바꿀 수 없는 진리 같은 것들이,
다 부질없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소크라테스가 "올바름이란 무엇인가?", "탁월함이란 무엇인가?"를 가지고 답을 내지 못하고 한참을 논리적인 추론으로 탐구를 하다 답을 얻지 못하고 고개를 젓는 모습처럼.


가끔은 확고한 무엇이 있는 사람들이 바보 멍청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떨 땐 그런 확고한 무엇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때 짜라가 지칭했던 바보 멍청이들처럼.


대필작가는 자신이 쓴 책의 출판 기념회에 가지 않는다고 한다.
많은 시간 공들인 자식의 멋진 모습을 그냥 멀리서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아무도 내가 쓴 그 책을, 내가 썼다는 것을 모르고, 내 앞에서 떠들어 댈 때 어떤 느낌이 들까?
그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하고, 도전을 모르는 용기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짜라도 언젠가 책을 쓸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어쩌면 짜라도 'The Ghost'가 되는 건 아닐까?
누구도 '난 나중에 "대필작가"가 될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태니까 말이다.


그래도 짜라에겐 확고한 무언가가 있긴 하다.
요즘 며칠째 계속 듣고 있는 노랫말처럼…….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



교육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뒤풀이에서도 이야기는 이어진다.
독서모임에서 거의 매번 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 같다.
시간이 된다면 그 이야기는 내일 다시 써봐야겠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