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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5 마당을 나온 암탉

2009/01/25
독후감: 마당을 나온 암탉

삼주 전이었던가, 우연히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게 되었다.
친구가 추천해준 책이다.
정말 감동적인 책이라고 했다.

이 책에는 이런 말이 쓰여진 띠가 둘러져 있다.
"2000년대 최고의 어린이문학 화제작!"
그래, 이 책은 아동문학책이다.

M군의 말을 빌자면,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이해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힘들 것 같은데……."
"내 수준이 너무 낮은가?"


이유야 어쨌든, M군의 적극적인 추천에 힘입어 책을 펼쳐 들었다.
이 책은 아동문학답게 삽화가 많이 나온다.
주인공 암탉을 그림으로 접한 처음 소감은 철수지 소녀 같은 느낌?


이야기의 시작은 양계장 닭장 속  암탉의 고민으로 출발한다.

암탉 '잎싹'은 닭장을 벗어나고 싶다.
어려서 처음 여기 갇혔을 때부터 줄 곳 밖에 보이는 넓은 마당은 어떤 곳일까 상상을 하곤 했다.
아카시아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는 아카시아나무 밑에 서 볼 날이 있겠지.


잎싹은 자신이 낳은 알을 한번 품어 볼 수도 없었다.
알을 낳으면 그 즉시 때구르르 굴러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잎싹은 다짐한다.
품지도 못할, 깨어나지도 못할 알은 더 이상 낳지 않겠다고.

그렇게 며칠을 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흐물거리는 알이 나왔다.

마음이 짠했다.

발톱으로 찌르면 금세 터져 버릴 것 같은 쭈글쭈글 연약한 알이다.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게 아닌지 돌이켜 보게 되었다.
주인은 그 알을 보더니 바닥에 던져 버렸다.

늙은 강아지가 달려와서 껍질까지 다 핥아먹고는 집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 발을 포개 머리만 내밀고 누워버렸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알은 나오지 않았다.
잎싹은 일어설 기운도 없었다.
이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모든 게 끝나 버릴 것만 같다.


며칠 후 잎싹은 닭장에서 꺼내어 졌다.
외발 수레에 던져졌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다른 닭들도 잎싹처럼 외발 수레에 던져졌다.
나른하고, 몸이 너무 무겁다.
잎싹위로 쌓여지는 무게를 느끼며,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


무언가 시원한 것이 몸을 때렸다.
정신은 들었는데, 여기가 어디지?
어딘지 모를 구덩이에 다른 닭들과 함께 던져져 있었다.
아니 버려져 있었다.
어디선가 무서선은 눈이 잎싹을 주시하고 있다.
그 눈은 그렇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족제비의 눈이다.

구덩이 밖에서 다른 존재가 잎싹을 불렀다.
마당에서 자주 봤던 천둥오리가 잎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빨리 나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천둥오리의 도움으로 족제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농장으로 돌아갔다.



이야기는 시작부터 긴장감이 넘친다.
한고비 넘어 또 한고비, 또 한고비, 힘들게 하루하루를 해쳐 나간다.

농장의 마당에서 쫓겨나고, 아카시아 나무 밑에서 며칠을 보낸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너무 배고파.

닭장에 있을 때는 시간만 되면, 주인이 알아서 밥을 주었다.
배고픔에 대한 걱정을 해본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닭장을 나오기 전 며칠 동안 굶은 것은 잎싹의 의지였다.
그곳에서 벗어나고 보니, 꿈에 그리던 마당으로 와 보니, 이제 상황은 정 반대가 되었다.

내가 왜 그곳을 나왔을까?

몇 번을 고쳐 생각해 본다.

그래도 평생을 닭장에서 사는 것 보다는, 배는 고프지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게 더 좋아.


잎싹은 그 후에도 힘든 일이 생길 때 마다 닭장을 생각하곤 한다.

내가 왜 그곳을 나왔을까?

그렇게 고민에 쌓였다가도, 결론은 언제나

내 선택에 후회는 없어.

이다.


잎싹은 닭장을 나온 이후로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 갔지만, 여전히 알을 낳을 수 없었다.
알을 품어보고 싶었는데,
병아리를 보고 싶었는데,
닭장을 나온 가장 큰이유가 그 열망에서였는데.

우연히 찔레덤불 속에서 알을 발견했다.
잎싹은 깜짝 놀랐다.
알 가까이에 가 보았다.
아직 따듯했다.
엄마는 어딜 갔을까?
금방 돌아올 것 같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알을 주시하며 서성거렸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고서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슬슬 알이 걱정되었다.
잎싹은 알을 품었다.
행복했다.

그 이후로 잎싹은 알을 계속 품었다.
잎싹을 구해줬던 천둥오리가 이번에는 잎싹에게 먹이를 가져다주었다.
생명을 구해준 친구이면서, 이번엔 먹을 것 까지 가져다주었다.
천둥오리가 참 고마웠다. 한편으론 저렇게 잘해주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알은 깨어나고, 귀여운 병아리가 태어났다.
잎싹은 행복했다.
병아리는 자라날수록 닭과는 다르게 자라났다.
마치 친구 천둥오리를 닮았다.


새끼 천둥오리는 점점 자라났고, 엄마와 닮지 않은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세상에서 엄마가 가장 좋은 만큼, 닮지 않은 자신이 어색했다.
그래도 새끼 천둥오리는 별 탈 없이 잘 자라 나그네 천둥오리 무리를 만나 그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고, 결국 엄마를 떠나갔다.

잎싹은 그런 자식을 보며 흐뭇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허전하기도 했다.
천둥오리가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잘해주었던 생각이 났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책의 마지막은 잎싹의 죽음으로 끝난다.
슬프기도 하고, 그래서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하다.
잎싹은 죽음을 담담히 준비했다.
그리도 편안하게 죽음을 초대했다.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너무나 단순하다.
정말 아동문학이라고 할 만큼.
그러나 그 속에서 전하는 이야기는 전혀 단순하지 않다.
정말 M군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짜라또한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심오한 뭔가가 있다.


이 책은 몇 가지 사색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첫 번째, 안정된 자리를 벗어나 도전하라.

언젠가 짜라는 창업을 하리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쉽지 않은 경영학 부전공을 했었다.
그로인해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힘들고 어렵더라도.
그러나 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과연! 창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표만 남는다.
짜라도 잎싹처럼 과감히 울타리를 벗어 날 수 있을까?

두 번째, 꿈을 위해 헌신하라.

고난이 닥쳐올 때, 힘들어 더 버티기 힘들어 쓰러질 것만 같은 때.
그 때, 꿈을 생각하라.
내가 품었던 그 때의 꿈.
그 꿈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살아있는 그 꿈.

세 번째,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슬픔.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고 견디어 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상실.
그 슬픔.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내 인생' 인가 보다.

네 번째, 핏줄이 아닌 자식의 부모로 산다는 것.

가끔은 이자리가 '나'의 자리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냥 벗어 날 순 없다.
여태껏 '나'의 자리인양 행동했는데, 지금에 와서 '아무것도 아니었노라.' 돌아선다는 것은 못할 짓이다.
알면서도 견디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나'를 희생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소중한 무었을 지킨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다섯째, 나와 다른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

잎싹은 오리인 자식을 가르칠 수 없었다.
수영도 할 수 없었다.
더더욱 날 수도 없었다.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자식을 보며,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을 것이다.
자식이 '나'처럼 생각 할 수 없음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도 모른다.
타인을 바라보듯,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자식은 행복인 동시에 표현 못할 슬픔이다.

여섯째, 자식을 떠나보내야 할 때.

언젠가 품안에 자식은 따듯한 품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아간다.
짜라도 언젠가는 그런 경험을 할 것이다.
경험이 없기에, 몇 마디 말로 단정 지을 순 없다.
다만, 부모님 세대를 보며 간접 적으로 나마 해아를 뿐.

일곱째, 내가 누울 자리.

아무리 잘랐어도,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잎싹은 담담히 받아드렸다.
짜라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늘그막에 초가집 하나 짖고 편안히 지냈으면 한다.
밭농사, 논농사 한번 해본 적 없지마는, '닥치면 설마 못할까?' 하는 오만한 기대를 품는다.


며칠 동안 이 잎싹이 푸닥거리며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그동안 잎싹은 내 머릿속에 알을 낳았다.
짜라도 잎싹처럼

잘 품어야

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