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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10/08/03 안개 자욱한 여수항

2010/08/03
짜라일기: 안개 자욱한 여수항

M군 어머님은 일찌감치 일어나 이것저것 준비하신다.
짜라도 그 소리에 비스듬히 깨어 6시도 전에 정신이 들었다.
6시까지 눈을 감고, 달아나버린 잠의 조각을 붙들고 씨름을 한다.

어머님이 차려주신 간소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항구에 도착해 가까운 은행에서 거문도에서 필요할 만큼의 돈을 찾는다.
여행에 필요한 몇 가지 물품을 사기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우리가 탈 배이름은 "오가고호"다.
"오가고호" 오고간다는 의미겠지.
고심해서 만든 이름이겠지만, 담박하고 좋다.
이름은 고심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고 단번에 생각나는 걸로 이름 지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5분을 남겨두고 배타는 곳 입구에 갔는데, 안개로 인해 출항할 수 없다고 한다.
8시 반에 출항 유무가 결정 된다고 승선 게이트 위에 붙은 전광판이 반짝인다.

08:25 어떤 아저씨가 확성기에 대고 뭐라고 떠들고 있다.
아마도 출항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주위는 소란스럽고 증폭된 소리도 크지 않아 잘 들리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들어보니 오전 배는 취소되었고, 필요하면 오후 2시배를 이용하라고 한다.
오후 2시에는 안개가 것이리라는 보장도 없고, 무작정 기다리기도 그렇고 해서 인근에 있는 다른 관광지로 가기로 한다.


남해 여수까지 온 목적은 검은도에 가기위해서였는데, 안개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쉽게 찾아오지 않을 기회이기에 더욱 안타까움이 크다.
언젠가 거문도에 가볼 또 다른 기회가 올까?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방황할 듯하다.


어딜 갈까 잠시 망설이다, 보성으로 향한다.
지리적으로 멀지 않고, M이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거기 가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접했기에 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녹차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갔는데, '대한다원'이란 이름으로 관광지처럼 조성된 녹차밭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휴가철에 이곳 보성 녹차밭에 놀러왔다.
녹차밭은 TV에서 본 느낌과 유사했고, 향기는 없었다.
산비탈에 층을 내어 심어놓은 녹차나무의 푸르름이 아기자기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냥 밍숭맹숭 사람들의 물결에 밀려 걷기는 지루한 감이 있어, 손에 잡히는 녹차잎을 몇 잎 따서 손으로 몇 번 문질러본다.
찻잎에 내려앉았을 먼지를 닦아내는 마음으로 여러 번 문지른 다음, 원초적 본능에 따라 입으로 가져가 찻잎 끝부분을 조심스럽게 씹어 본다. 약간의 향긋한 풀내음이 잔상처럼 일었고, 맛은 생각보다 쓰지 않았다.
차밭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을 때 입에 그 찻잎을 그대로 물고 포즈를 취한다.
뭔가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해서 즉흥적으로 했는데, 하다 보니 그렇게 찻잎을 입에 물고 사진 찍는 게 나름 재밌게 느껴졌다.
관광객이 드나들 수 있게 개방된 녹차밭은 일부뿐이어서 차밭을 돌아보는 대는 채 30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녹차밭을 돌아보기엔 충분한 시간이고 공간이다.

녹차보다는 주차장에서 차밭까지 이어기는 길에 하늘을 찌를 듯 길쭉하게 솟아있는 삼나무 숲길과 대나무 숲길이 인상 깊다.
그 숲길 속에서 산림욕을 하기위해 이곳에 온 듯 한 착각이 든다.
대나무 숲길에 자란 대나무 직경이 15cm는 될 정도로 엄청 컸다.
그런 대나무가 길을 따라 둘러서 있고, 대나무들 사이로 시선을 더 멀리 던지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대나무들의 군무를 확인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파라솔이 하늘을 가린 원형 탁자에 둘러앉아 시원한 녹차쉐이크를 떠먹으며 잠시 더위를 물리친다.
앉은 김에 가져간 자두도 먹고, 복숭하나 먹는다.


함께 같던 M의 애완견 또잠이는 '애완견 출입금지'로 어쩔 수 없이 주차장에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


M군의 여수 집으로 향하는 길에 순천만에 들르기로 했다.
순천만에 가서 커피를 마시면 손으로 만든 커피 잔을 공짜로 준다고 몇 번이나 자랑처럼 이야기 하더니.
결국 그런 커피숍은 찾지 못했다.

순천만 생태공원은 생각보다 부지가 컸다.
넓은 갈대밭에 바람과 상관없이 쓰러져 있는 갈대들과 오손도손 무리를 지은 갈대들이 온통 시야를 가득 채웠다.

M군 어머님만 아니었으면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걸어 다니며, 여기저기 이것거것 구경하고 다니며 사색도하고 사진도 찍고 했을 탠데, 그냥 짧게 구경하고 집으로 향한다.
연인끼리 이곳 생태공원에 넓게 펼쳐진 망망대해 갈대바다를 한가롭게 거닐면 좋겠다 생각을 한다.
사실 찌는 듯 한 더위로 한가롭게 거닐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다.
그날은 안개로 해가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았는데도 그 정도 더위였으니, 해가지 방실 웃는 날씨였으면 찜 쪄 먹을 날씨에 한가로운 나들이가 가능이나 하겠는가.
가을에나 오면 딱 좋을 것 같다.


거문도에 들어가서 갈치회나 먹자 했는데, 수포로 돌아갔으니 그나마 기분이나 낼 겸 항구에서 횟감이나 사서 시원한 맥주에 먹으면 좋겠단 생각으로 횟감과 이것저것 사가지고 집으로 M군 집으로 간다.

에어컨 틀어놓고 시원하게 둘러앉아 회 맛을 본다.
홍어와 서대다.
서대는 남쪽에서 즐겨먹는 물고기란다.
납작하게 생겼고, 살결은 옅은 핑크색과 붉은색이 석여있다.


막걸리를 한잔 비울 즈음 M군 전화벨이 울렸고, 순천대학교 사람이 만나자고 한다.
M군은 조금 마뜩찮은 표정이지만 만나긴 해야하나보다.
함께 가기로 한다.

택시타고, 시외버스타고 순천역 앞에서 만나 낙지전문점에서 반주와 함께 저녁을 먹는다.
일, 회사, 가족, 휴가 이야기를 화젯거리로 이야기하고, 2대2 당구에서 우리가 이기고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에 아쉬움을 달래고 해어진다.
올 때와 같이 택시타고, 시외버스타고, 택시를 타 집에 도착하니 저녁 11시 반쯤 되었다.

아까 먹다만 회에 욕심을 부려본다.
그러나 이미 배는 부르고 더 이상 뱃속에 뭘 넣기는 용량 초과다.
몇 가지 생각했던 계획들을 수정해 그냥 꿈나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