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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9 세상은 순리로 돌아간다

세상은 순리로 돌아간다

2012/03/29
짜라일기(독서일기)

료마가 간다 5 | 시바 료타로, 역:이길진 | 창해 | 2003-04-25 | ***


3월 한 달에 걸쳐 『료마가 간다』 다섯 권을 읽었다.
읽으며 느낀 료마라는 인물을 정리해 본다.

일단 기이한 행동을 좋아하고, 항상 거지꼴을 하고 다닌다.
키는 176cm 정도 이고, 차림은 보통 그 시대의 무사 차림이다.
지금으로 치면 그리 큰 키는 아닌 적당한 키이겠지만, 5권의 배경인 1863년에 료마는 큰 키의 거구 사내로 기억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씻어야 된다는 것은 누가 정한 것이냐며, 료마는 씻기를 거부한다.
어려서는 누나가 씻겨줬고, 커서는 료마에게 마음이 있는 여자들이 씻겨줬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씻지 않았다고 하는 게 정확 할 것 같다.
상상 속에 료마를 그려보면, 다 해어져 빛바랜 검은 천으로 된 무사 옷을 걸치고 있는데 옷에는 흙먼지와 땀, 음식찌꺼기가 붙었다 떨어진 자욱이 붙어있고, 거기에 다시 땀이 짜들고 비바람을 맞아 젖었다가 마르기를 반복한 옷을 입고 있다.
머리에선 시큼한 땀 냄새가 진동을 하고 몸에서도 일주일은 씻지 않은 사람에게서 날법한 오묘한 냄새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료마에게는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뚜렷이 어떤 면이 사람을 끄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언행이 무척 특이하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논리와 시류를 따지는 사람들 앞에서 료마는 태연하게 자신은 바보라서 그런 것은 잘 모른다고 답하면서 약간은 선문답과도 같은 질문을 한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에 논리를 따지는 사람들도 멍해지기도 하고, 그냥 헛웃음 치기도 한다.
료마는 본능적으로 대립이나 싸움을 실어한다.
그래서 적을 만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 까지도 자기편으로 만든다.
논리 보다는 주위의 기를 읽어내어 분위'기'를 바꾸는 능력이 타고 났다.


료마는 말이 많지 않지만, 어떤 확신 같은 게 언어에 녹아있다.
시대가 병들었고, 과거부터 내려오던 전통처럼 여겨지는 무사계급이니 신분제도 이니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서양의 학문을 배운 사람들과 교분을 쌓는데, 이때 료마의 이런 생각의 바탕들이 그들과 가까워지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서양의 생활상과 역사를 서양을 공부(양학)한 학자들로 부터 전해 듣고 토론 하면서 점점 자신이 여태껏 그 무엇이라고 뚜렷하게 떠올리진 못했지만 시대의 병을 고치고 다시 일어 설 수 있는 길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양학을 배우면서 부터 료마의 언어엔 더욱더 확신이 더해져서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과 지인들조차도 그런 료마를 보며 허황된 생각이라거나 무모한 행동 이라고도 하고, 위기에 처한 현실을 외면하고 몽상에만 사로잡혔다고 질타한다.

5권에서 료마는 다른 사람이 허황된 꿈이라고 치부하던 것을 하나 이룬다.
그것은 료마의 첫걸음 이라고 할 수고, 생각에 날개를 달았다고 할 수도 있다.

료마는 미색이 출중한 여인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대부분의 책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그렇듯이.
역사적 사실인지 픽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야기에서 로맨스는 사람을 몰입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짜라는 이 책에서 만큼은 그게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은 몇 가지 면에서 잘 읽히지 않는다.
첫 번째로 사람이름이 길다.
보통이 두, 세 단어로 이루어진 이름이고, 상황에 따라서 성을 부르기도 하고 이름을 부르기도 해서 조금 어렵다.
두 번째로 길고 복잡한 직함이나 이름을 수식하는 호다.
직함과 그 직함을 설명하는 괄호안의 설명글이 너무 길어서 그런걸 다 주시하다 보면 책의 흐름을 자꾸 놓치게 된다.
세 번째로 집단의 이름이 복잡하고 다양하다.
네 번째로 등장인물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5권에서만 족히 100명이 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인물이 등장 할 때마다 그 사람의 이력을 간략히 요약 하고 넘어가는데 가끔은 3페이지에 걸쳐 설명할 때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첫째, 둘째, 셋째 이유를 종합하면 그야말로 설명의 덧에 빠져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잊어버리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무슨 조직에서 어떤 일을 하고 직함은 무엇이며 이름은 뭐다.'라고 한사람만 소개해도 몇 줄에 걸치는데 거기다 그와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가 양념으로 첨가 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 23명이 죽었다고 하면 그 사람들의 이름을 죽 나열한다.
이런 부분은 약간 역사책 같은 느낌이 든다.


5권의 시대배경은 1863년이다.
서양이 언제 쳐들어와서 중국처럼 강제 개항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회를 어지럽히던 시국이다.
시대를 바로잡겠다고 일어섰던 영웅들이 하나씩 비운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시대를 이끌던 영웅들이 사라지고 아무도 없는 빈자리에 홀연히 살아남은 반쪽 영웅이 바로 료마다.
료마는 그런 배경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방향을 잃고 지도자를 찾아 흔들리는 사람들의 지도자가 된다.
료마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움직일 것을 요구하지만 료마는 아직도 때가 이르지 않았다며 하늘의 기운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세상은 논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순리로 돌아간다.
료마는 그 순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 같다.
때를 기다리는 독수리처럼 날개를 접고.
그러나 마냥 기다리고만 있진 않는다.
때를 기다리며 자신에 그릇을 만들어 간다.
그릇이 완성되어 갈수록 ''가 무르익어 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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