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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7 삶과 죽음

삶과 죽음의 문제

2012/08/17
짜라일기

이 먼저 일 까, 죽음이 먼저 일 까?
이 먼저일까, 겨울이 먼저일까?
시를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이 먼저 일 까, 저녁이 먼저 일 까?
창조가 먼저일까, 종말이 먼저일까?
시를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비가 먼저 일 까, 번데기가 먼저 일 까?
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다.
시를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든 생성과 소멸의 화두로 읽히고, 사랑으로 읽히고, 끝없는 슬픔으로 읽히고, 환희로 읽히고, 그리고 희망으로 읽힌다.

삶이 먼저일까? 죽음이 먼저일까?
짜라는 죽임이 먼저일 거라고 생각한다.
전기를 보면 '언제 어디서 태어났다'로 시작하지만, 사실 그것은 잘못되었다.
그 사람의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그의 전생에 어떻게 죽었는지 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것은 마디의 끝과 시작의 문제이다.
우리는 시작은 명확히 보지만 끝은 명확히 보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무슨 일을 시작은 하지만 어떻게 끝이 났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꿈을 꾸는 일 또한 그렇다.
뭔가 하고 싶은 것들 중에 간절한 것들이 꿈이 된다.
그 꿈들은 유년시절을 추억과 함께 평생을 가게 되지만, 어느 순간 잊혀진 꿈이 되어 버린다.

생각만 하다 구겨 버려버린 아이디어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실현 되었을 때 안타까워한다. 내가 먼저 생각했었는데, 저놈이 내껄 훔쳐가 버렸다고 장탄식을 한다.
그것은 사실 내 것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도 나보다 먼저 그런 생각을 했고, 먼저 구겨 버렸다.
끝을 내었더라면 후회는 없을 탠데 항상 가늘게 연결된 생각의 지문들이 주위를 맴돌며 후회의 잔상을 남긴다.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는 것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기만 하면, 나중엔 시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시작 할 수 있도록, 다시 시작 할 수 있도록, 끝내도록 하자.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다면, 그것은 끝내야 할 것들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버림이 미덕인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는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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