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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1 탐욕, 근로

어느 라틴 시인이 “돈은 탐욕을 부채질할 뿐, 그것을 충족시키지는 못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끊임없이 조장되는 우리의 소비 욕구는 “언젠가는 충족되겠지” 하는 헛된 기대를 비웃는다. 이것은 마치 “이번 프로젝트만 끝마치면 휴식이 있겠지” 하는 위안 섞인 기대와 똑같은 것이다. 아마도 더 힘들고 더 오랜 노역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도시인들은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한다. 이제 자기 존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일하는 기계만 남게 된다. “나는 일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휴가조차도 다른 종류의 근로이다. 평소에 미뤄두었던 일--가족과의 여행이나 독서나 집안의 수리--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재충전이라고들 하던가.

[키치, 우리들의 행복한 세계 / P. 36] 중에서…….

욕구의 충족은 더 큰 탐욕을 부른다.
존재를 위해 애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소유하고 소비하면 되는 것이다.

탐욕에 끝은 어디일까? 탐욕엔 끝이 없다.
끝없는 탐욕을 위해 우리는 끝도 없는 일에 파묻혀 살아야 한다.

위 글은 통속예술에 대한 설명 중에 나오는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이 탐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요즘 대한민국엔 웰빙(well-being)이란 신조어가 유행이다.
먹거리부터, 입는 것, 자는 것 까지 (의식주) 웰빙의 범주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마을 공동체를 형성해 살던 옛 우리조상의 삶이 웰빙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도시에 살면서 돈으로 웰빙을 사고, 사고, 또 사지만, 결국 그것이 웰빙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렇게 속으면서도 똑같은 속임수에 또 속는다.


우리 생활의 틀을 깨지 않는 한, 그 굴레를 벗어날 순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