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라일기 2008/02/24
날짜를 적다가 갑자기 2008이란 숫자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예전 1999년에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것에 대한 공포랄까. 그때는 그 공포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그 공포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인간들은 스스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공포라는 이름을 짓고 두려워한다. 만에 하나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비를 하고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그때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면, 핵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유출되거나, 날아가던 비행기가 떨어지거나, 발사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미사일이 발사되어 인류를 멸망시키는 사태가 발생 했을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만약이란 가정을 붙이는 일은 쓸데없는 일이다.
Gunparade Orchestra 2005년에 제작된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전반적 줄거리는 마물이 지구를 공격하는 시대에 그 마물을 막고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일반적인 악당을 물리치는 드라마들과 달리 이 만화에선 마물을 물리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팀원들 간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갈등과 화해, 미움과 사랑들을 쫒아간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희망을 찾아가고, 갈등들을 어떻게 해결해 가는지,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항상 옆에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고, 그것이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 등을 이야기 한다. 로봇 메카닉 만화를 기대 했지만, 그런 기대로 이 만화를 본다면 다소 실망할 것이다. 휴먼 드라마로 보아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복잡한 동물이다.
Solty Rei 휴먼 메카닉 만화이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기억이 없는 솔티 레이라는 소녀가 나온다. 그녀는 온 몸이 기계화된 미지의 소녀다. 아무런 기억도, 지식도, 관념이나 상식도 없는 백지 상태의 소녀. 온몸이 기계화된 그녀는 인간인지, 기계인지 정확히 알 수조차 없다.
총 24부작으로 제작된 만화 중 16부를 보고 무언가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 속 주인공들은 갈등을 겪는다. 사랑하는 가족의 상실. 그로인해 남아있는 가족마저 와해 되어가고, 삶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인생을 포기한다.
그리고 다시 제기한다.
어쩌면 삶이란 그렇게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항상 오르막만 있다면, 그것이 오르막인지 의심이 된다. 정말 잘하고 있는지, 항상 일상적이어서, 잘되어 가고 있지만, 정말 그런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가끔씩 내리막이 생길 때, 그때 직전에 오르막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이란 그렇게 시소를 타듯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면서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또한 만화 속 주인공 '루이'처럼 멍청한 생각으로 잘못된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곳에서 벗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먼지 묻은 바지를 털어내며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간다. 완벽한 인생을 그린다면, 항상 좌절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완벽을 포기하면 그런 대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내가 나 인 이유는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윌'이란 인물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했다. '가족이건 친구건, 사랑이건 생명이건 간에 가지고 있는 건 전부 버리면 되.'
'하지만 만약 미련이 남아 있다면, 다시 한 번 매달려 보는 건 어때? 설령 그 이후가 되더라도 버리는 일은 언제든지 할 수 있어. 매달려 보는 거야 조금 꼴사나워 지겠지만, 그 후에 버려도 늦진 않아.'
움켜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가끔 보게 된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라고 말한다. 너무나도 어려운 일을 너무나도 쉽게 말했다. 그리곤 미련이 남는다면 다시 한 번 매달려 보라고 한다. 그 후에 버려도 늦진 않는다고. 어중간하게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에게…….
P.S. 오래전 기억을 다시 들추고 있다면 Solty Rei 16편을 다시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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