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인된 도시가스의 부활
이야기는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7월 초 3달간의 중국 출장길에서 돌아왔다.
몇 일후 가스가 끊겼다. 중국 가 있는 동안 후배가 집에 있었다. 그러나 그놈은 세상 모든 일에 귀찮음을 느끼는 놈이라, 시키는 일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중국 출장 중에 한번인지 두 번인지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가스 끊긴다는 최후 통첩문이 왔다고 했다. 요금납부 방법을 모른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쉽게 낼 수 있다고 했더니, 그런 쉬운 방법이 있냐고 하며 반문한다. 잠시 뒤적 거리는 거 같더니 어떻게 하는지 알 것 같다면서 전화를 끊었었다.
결국 가스 비를 내지 않았다. 하루는 후배 녀석이 가스레인지 사용법을 물어본다. 어떻게 해야 불이 붙는지 자기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가스레인지에 무슨 사용법이 있냐고 면박을 주고는 부엌으로 갔다. 가스레인지 버튼을 눌러보았는데, 전깃불이 탁탁 튀기만 할뿐 불은 붙지 않았다. 가스밸브를 열었다 닫았다, 돌려보고 다른 문제 될 만한 것을 점검해 봤지만, 문제는 없었다. 그제서야 가스가 끊긴 것이구나 알게 되었다.
인터넷 지로납부 사이트에 들어가 밀린 가스 비를 모두 정리하고, 1주일, 2주일을 기다렸지만, 가스가 다시 나오진 않았다. 결국 삼천리도시가스(031-225-3002)에 전화를 했다.
남자분이 전화를 받았다. 이러이러해서 가스가 끊겼고, 요금 지불한지 한참 지났지만, 가스가 안 나온다고, 중국 출장이야기부터 죄다 했다. 한참을 듣고 있더니, '고객님' 하면서 미납요금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가스가 끊어졌을 리 없다고 하며, 혹시라도 안 나오면, 집주위에 밸브를 찾아서 열어주면 된다고 설명했다. 10시가 넘어 퇴근해 가스계량기에 다가가니 과연, 평소 눈여겨보지 못했던 밸브가 있었다. 있긴 한대 1층 것만 있고, 내가 사는 2층 계량기의 밸브는 없었다. 밸브가 있어야 할 곳엔 경고문이 붙어있었다.
함부로 손대면 큰코다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몇 주가 흐른 뒤, 삼천리 사이트에 들어가 전화번호를 찾았다. 1688-3002 지로 영수증에 있던 전화번호는 수원 번호였는데, 이건 전국번호다. 암튼 전화를 하고 안내 연결을 기다렸지만,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항상 회사일에 쫒기며 일하다보니, 한 달 동안 2~3번의 전화 연결은 결국 무효로 끝나고 말았다.
9월 초 도시가스 요금 통지서가 날아왔다. 당월 청구금액 1540원 요즘 왕복 버스비가 2000원인데, 그 버스비도 안 되는 돈을 보자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두 달 동안 가스 사용 못한 것도 억울한데, 짜라더러 사용하지도 않은 돈을 내라니. 일주일 후 지로 영수증에 나온 수원 전화번호(031)로 전화를 했다.
여태까지 있었던 전후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죄송합니다. 를 주문처럼 외운다. 짜라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죄송하면 대가를 치러야죠, 전 이돈 내지 못하겠어요." 짜라의 의지는 강력했다. 논리도 분명했다. 가스요금 납부마감일에서 하루만 지나도, 연채 분을 내야 한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히 여긴다. 인프라를 필요로 하는, 전화, 상하수도, 전기, 인터넷 등 모든 생활에 밀접한 서비스 들은 다 사용 유무와 상관없이 기본료가 나온다. 가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경우는 강제적으로 사용이 제한되어 있는데, 사용을 할 수 있는데 안한 것과, 하고 싶은데 못한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 요지로 설명을 했지만, 전화 상담원은 "고객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도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라고 답변 했다. 거대한 시스템의 한 부분을 안내를 하는 자기로서는 능력 밖의 일이라고 했다. 더하여, 삼천리 본사가 아닌 대리업체라 더더욱 힘이 없다고 했다.
논리적으로 아무리 설명해도, 충분히 납득하고 미안하다고만 하지 책임을 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니, '죄송합니다.'라고 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책임지어진 것처럼 말했다.
이 지경에 이르자 거의 이성을 상실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사회적인 동물의 본성을 바탕에 깔고 이야기했다. 좋다. 꼭 그것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내겠다. 단지 '삼천리'측에서도 책임을 저야 한다. 두 달간 사용을 못하게 한 보상으로 10만원을 달라고 했다. 거의 악의에 찬 내용이지만, 음성만 조금 올라갔을 뿐, 최선을 다해 사회적 정중함을 유지했다. 하루만 늦어도 연체가산금을 당연한 듯 요구하면서, 스스로의 실수를 그냥 말 한마디로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삼천리'를 짜라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 이르자, 안내하시는 분도 크게 당황 한 것 같았다. 10만원은 무리한 요구라고도 했다. 짜라를 설득하기위해 죄송하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나 짜라에게 '죄송하다'는 말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
실랑이 끝에 짜라의 마지막 견해를 말했다. 10만원을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차비도 안 되는 돈이지만,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요구하는 '삼천리'라는 회사가 괘씸할 뿐이다.
체념한 듯 상담원은 자신의 돈으로 그 연체금을 납부해 주겠다고 한다. 5초간 망설이다, 누그러진 말투로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했다.
전화를 끊고 일을 했다. 일단 목적을 달성했지만, 마음이 편친 않았다. 안내한분이 잘못한건 없었다. 분노한 고객을 상대로 끝까지 친절함을 유지했으니깐. 그런데 그 보상으로 큰돈은 아니지만,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야 했다. 그런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10분쯤 고민을 했다. 대신 식사라도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직접 만나는 것을 좋아할 것 같진 않았고……. 아무리 아주머리라도, 초면인 남자와 식사하는 게 편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 조금 전 상담해 주었던 분과 통화하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5분후에 전화가 왔다. '구복희'라고 했다. 아까완 사뭇 다른 온화한 억양으로, 짜라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이해해 달라고 했다. 대신 삼천리 게시판에 친절한 상담을 글로 남기겠다고 약속했다.
전혀 도움 될 것 같지 않은 이런 고집이, 세상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안다고 그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마찬가지다.
언젠가는 변하겠지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변화된 짜라를 발견 할 때 쯤, 지금 이 시절을 어떻게 생각할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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