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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0 알차게, 건강하게

2008/09/20 알차게 건강하게

03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다 읽고 자려 했지만, 일 욕심을 너무 많이 내다보니 02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는 바람에 목표달성 실패. ㅡㅡ;
만만찮은 독후감도 책을 다 읽지 못했으니 쓰기는 글렀다.
피곤했는지 금방 잠이 들었다.

어렴풋 잠에서 깨었다. 거실에선 동생이 게임하는 소리가 소곤소곤 들린다.
약 1분간 누워서, 의식이 제자리에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밤새 놀러나갔던 의식은 급할 것 없다는 듯, 느긋하게 초점을 맞춰오고 있다.
어제 읽지 못한 책이 숙제처럼 다가온다.
다음 주가 독서모임인데, 일찍 읽고 독후감을 올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했지만, 생각으로 그치고 말았다.

11시다, 배가 조금 고프지만 참기로 했다.
모든 것에 우선해서 일단 숙제부터.
세수도 하지 않고, 일어서지도 않고, 눈 가장자리에 눈곱도 그대로 둔 체로, 옆에 널브러져 있는 가방에 손을 뻗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이루어 졌다.
양 팔꿈치로 상채를 비스듬히 일으키고, 손바닥에 책을 올려놓고 읽기 시작한다.
10분쯤 읽었을까 금방 눈에 피로감이 밀려온다.

간단하게 정신 차리기 채조를 하고, 본격적으로 책읽기에 도립한다.
양반다리를 하고, 책상을 끌어당겨 읽기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배가 고팠지만 꿋꿋이 참았다.
13시가 조금 넘어서야 다 읽었다.
동생과 함께, 초라하기 그지없는 밥상을 차려놓고 아점을 먹는다.
10개월 동안 곰팡이 쓸지 않고 버티고 있는 시큼한 배추김치.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짜라는 무척 좋아한다.
역시 같은 나이를 자랑하는 총각김치, 약간 맛이 갔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
없는 것보다 행복하지.
진공 포장된 김, 짜라 단골 메뉴 마늘장아찌, 마지막으로 동생이 어설프게 프라이 한 계란까지.
오랜만에 집에서 해먹는 밥이다.
올해 들어 집에서 해먹은 밥은 열손가락으로도 충분히 샐 수 있을 것이다.


추석도 끝났고, 기념으로 대충하는 대청소를 했다.
대청소라고 해봐야, 대충 널브러져 있는 집기들 정리하고, 구석에 처박은 다음, 청소기로 먼지 많은 거실과 부엌만 민다.
바닥의 상태를 보니 거실은 그런 대로 깨끗해 보여서 부엌만 닦는다.
여기까지가 동생이 한 것이고, 짜라는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키기만 했다.
짜라는 부엌에 쌓인 그릇들 설거지하고, 부엌, 화장실 정리 겸 청소를 한다.
식탁에 쌓인 먼지도 몰아낸다.

청소하는 동안 빨래도 돌리고, 청소가 끝난 후에 빨래 대에 널었다.
동생은 요즘 당구실력이 부쩍 늘었는데, 운동하러 가자고 성화다.
장도 볼 겸, 각자 가방을 하나씩 챙겨 들고 밖으로 나섰다.


아침에 눈 떴을 때부터 비가 왔다.
세차게 몰아치다가, 잦아들었다, 다시 또 세차게 몰아치기를 반복했다.
15시가 넘었지만,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다.
검은 우산 두개가 나란히 걸어간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공원당구장에 들어가, 손에 땀을 쥐는 게임이 시작된다.
동생은 평소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 모양이다.
동생은 당구실력은 안 늘고, 어디서 배워왔는지 평소에 하지 않던 말들을 마구 쏟아내었다.
당구계에선 금기시하는 일명 겐세이.
85분 동안 두 판을 쳤다. 두 판 다 짜라의 승. ㅋㅋ


비가 내린다.
홈플러스에 가서 장을 본다.
추석 때 이모 집에서 먹어본 장아찌(피클)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모에게 전화를 해 어떻게 만드는지 재료와 조리법을 주의 깊게 듣는다.
오이맛(아삭아삭) 고추, 맨질맨질 오이, 양파.
식초, 간장, 물, 소금, 설탕 등을 적당히 넣고는 팔팔 끓여서, 큼직하게 다듬은 재료들에 붙고 뚜껑을 잘 닫으면 된다고 한다.
중요한건 재료와 함께 끌이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더욱 중요한건 육수를 붓고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밀폐하는 것이다.
안 그럼 재료가 물컹해져서 씹는 맛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장보고 돌아와 비법대로 만들었다.
저녁에 생각해보니 식초와 소금 설탕 넣는 것을 깜빡했다.
2% 아니, 80% 부족한 피클이 나올 것 같다.
그것 말고 사소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맨질맨질 오이를 2cm 크기로 큼직하게 썰려고 했는데, 동생이 2mm크기로 다져 놨다.
사소한 문제다. 오이가 물컹해 지거든, 그 오이는 모두 후배 목으로 돌아가리라.

내일 부사장님과 등산 약속을 했기에, 등산바지도 산다.
등산화는 오전에 도착했다.

즐겨먹는 바나나 주스용 재료.
부추전에 필요한 청양고추.
부추는 지난주에 산게 냉장고에 있다.
일주일 지났지만 잘 다듬으면 먹을 수 있다.
다듬고 나니 1/3은 불량해서 버렸다.
뭔가를 해먹으면 항상 남는다.
그래서 집에서 뭔가를 해먹게 되면 먹고 먹고 또먹고 질리도록 먹어야 한다.

무지막지한 빨래비누, 전원용 멀티탭.
마지막으로 부추전과 잘 어울리는 맥주 두병을 샀다.


장봐온 물건들을 냉장고에 잘 채워 넣고, 다시 당구장으로 갔다.
당구 2차전.
이번만은 동생의 투지가 남다르다.
두 판을 내리 10분 안에 끊어버렸다.
당구장은 기본이 30분이다.
급 5판 3승으로 규칙을 바꾸었다.
짜라에게 무자비하게 불리한 상황이지만, 그냥 그러기로 했다.
다음 두 판은 어렵게 짜라가 이겼다.
짜라는 평균적으로 한판에 40분정도 걸리는 것 같다.
마지막 한판에 게임비가 달려있다.
막판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엎치락뒤치락 긴장된 경기가 진행되었지만, 결국 지고 말았다.
동생은 무척 기뻐했지만, 짜라는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진다는 것이 뭐 큰 대수인가, 돈이 좀 아깝긴 하지만, 함께 즐기는데 이정도 비용은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음이 있다.
동생은 쌓인 한이 많았는지, 한 번의 승리로 만족하지 못했다.
여태껏 진게 얼만데 한다.

처음 당구를 시작한건, 동생이 놀 줄 아는 게 없어서였다.
짜라도 잘 치진 못했지만, 다른 사람과 즐기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처음에 비하면 조금 발전했다.
그래도 여전히 못 친다.
목표는 한판에 30분인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평균 30분이 나오면 100으로 올리려는데, 언제쯤 실력이 늘는지.
그래도 보람은 있다.
요즘은 동생이 회사사람들이랑 당구를 친다고 한다.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의미다.
사교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직업이 프로그래머고 사람들과 어울려 할 만한 것들을 즐기는 게 없으니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짜라의 목표는 120이다. 평균 30분에 120을 놓고 칠 수 있으면 적당히 치는 수준은 되겠지…….


19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다.
동생과 함께 피클을 만들고, 부추전을 부쳐 먹었다.
한 달에 두세 번 이렇게 전을 구워먹는데, 어느덧 익숙해 졌다.
동생은 처음엔 시큰둥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즐기는 것 같다.
동생은 더욱더 맛있는 부추전을 부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심혈을 기울인 것 치고는 엉망으로 생겼지만, 맛은 일품이다.

저녁으로 부추를 먹고, 산책 겸 회사에 들러 오늘 배달되어온 등산화를 가지러 간다.
돌아오는 길에 만석공원에 들러 한 바퀴 휘 돌았다.
천천히 걸으며, 바람을 느낀다.
하늘을 보니 어둠속에서도 구름이 선명하게 보인다.
반달이 무척 밝게 비추고 있다.
노래를 흥얼거린다.
무슨 노래인지, 그냥 대충 상쾌한 기분이 몸속에서 흘러나와 멜로디가 된다.

경보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우리를 앞질러 걸어간다.
반쯤 돌았을 때, 언덕 아래 운동장 쪽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가 걷는 방향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의 등 뒤에서 소리가 들릴 즘부터 소리가 크고 명확하게 들려왔다.
무슨 뮤지컬 곡인가 같다.
처음엔 도란도란 부르더니, 나중에 점점 커져서 150m 나 떨어진 듯 한데도 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아침에 부사장님과 함께 등산하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엔 광교산 등산하기로 하고, 한일타운 앞에서 보기로 했다가, 나중엔 북한산에 가자고 했다. 그래서 시간 약속을 9시로 했는데, 어디서 만날지 장소도 정하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니 결번이라고 한다.
이런 큰일이다.
일단 약속시간에 회사로 가봐야겠다.
엇갈리지 말아야 할 탠데, 설마 어긋나서 등산 못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비는 오지 않아야 할 탠데, 오늘처럼 비오면 힘들겠지.
짜라는 비가와도 산에 가고 싶다.
비 따위 두렵지 않다.
좀 힘들긴 하겠지만, 굴하고 싶진 않다.


오늘은 이것저것 많은걸 한 것 같다.
나름 알찬 하루를 보낸 듯하다.

쓰다 보니 하루 동안 엄청나게 많은 일이 있었다.
사실은 여기에 생략된 이야기가 더 있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나, 농구대를 지나갈 때,
홈플러스와 당구장에서의 일 등등.
마치 영화를 다시 처음부터 돌려보는 듯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리고 지난기억들과 연관된 여러 가지 생각들도 줄줄이 떠오른다.

너무 길다.
이렇게 길게 적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아니 다음엔 쓰고 싶은 데로 마구마구 길게 적어봐야 갰다.
항상 글을 쓰면,
너무 길게 적지 말아야지.
조리 있게 정리는 잘되었나?
연관된 내용들이 유기적으로 배치해야지.

등의 생각들을 너무 많이 한다.
좋지 않은 생각이다.
일기를 쓸 때만큼은 있는 그래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듬어 쓸 때는 그렇게 쓰고 그렇지 않을 때는 편안하게 쓰자.
완벽하 지도 못한 녀석이 완벽하려 애쓰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