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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07 나는 마흔이 좋다

2009/02/07 나는 마흔이 좋다

J형 집에서 하루를 보내고 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마흔이 좋다』를 읽는다.
책을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가 스러지곤 한다.

많은 글감과 소제들이 자꾸자꾸 떠올라 집에 돌아가면, 그 생각들을 글로 옮겨야지 한다.
집에 돌아와 '자! 이제부터 글을 써볼까.' 하고 컴퓨터 앞에 앉는데, 어디서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분명 뭔가 간절히 쓰고 싶은 게 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나'라는 인간을 점점 더 잘 알게 되어간다.
아직도 알아야 할 것들이 많지만, 알면 알수록 두려움이 커간다.
'나'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이젠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


짜라는 바른생활 사나이로 살아왔다.
차한대 다니지 않는 왕복 1차선 횡단보도 앞에서도, 파란불이 되어야만 길을 건넜다.
동행하던 사람들이 다 지나가고 짜라를 빤히 쳐다봐도 그냥 한번 씩 웃어줄 뿐 그대로 서 있는다.
길에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려본 적도 없다.
타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옆에가 손을 내밀기도 한다.
길에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에게 10원짜리 하나 던져준 적이 없다. 그들에게 나의 도움은 오만한 자의 사치이자, 그들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동정일 뿐이라 생각했다.

책을 읽는 것은 좋은 것이다.
TV는 바보상자다.
술자리는 즐겨도 술은 즐기지 마라.
담배는 백해무익하다.
운동으로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을 지켜라.
이 모든 것들을 짜라는 지키며 살아왔다.


언제부터 짜라가 변하기 시작했을까?
그렇게 반듯하게 사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좋지만은 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이었을 것이다.
옳기만 하고, 반듯하기만 한 생활을 남들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반듯한 생활은 이런 것이니 이렇게 해라라고 하면, 그들은 세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이야기를 하냐는 듯, 싱거운 사람 봤다는 표정이다.
아는 것과 그렇게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바른 것을 바르다 말하는 것은 금기를 깨는 행위이고, 곳 공공의 적이 되고자 자처하는 것이다.
다행이 짜라가 바보는 아니어서, 그 말이 사람들에게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것을 일찍 알게 되었다.

너무 반듯하게 살아온 짜라가 부끄러운 생각도 들어 이젠 반항이라는 걸 해 보고 싶기도 하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거 보기도 하고, 줄을 서 버스를 타는 행렬 앞으로 끼어들어 승차를 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는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를 하는 짜라를 발견한다.


아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런 건지, 점점 주관이 뚜렷해지고 주장이 분명해진다.
30대가 되면서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주장들이 정답이 아니고 개인적 의견이라고 단서를 다는 정도 일 것이다.
그래봐야 단서일 뿐 주장의 정도에는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기도 했고,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도 이런저런 생각들을 참 많이도 했다.
명절에 부산에 내려가니, 사촌 형 형수님이 아이들 교육 문제에 대해 고민을 털어놨다.
질문을 미리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풍월을 읊조렸다.
짜라 머리가 좋긴 한가보다, 이야길 하면서도 이리저리 논리의 모순을 즉각적으로 발견하고 수정해 가면서 몇 시간을 이야길 나누었다.
풀기 어려운 난제들도 몇 가지 꺼내 놓으시는데, 분명 그 부분은 예전의 짜라도 고민했었고 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는데, 막상 그 질문을 받고 보니 즉시 뭔가 떠올라 그에 대한 답도 하고 있다. 스스로 이야기하는 말을 스스로도 처음 듣고, 말하며 놀라는 자신을 발견한다.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며칠 전 세미나에 참석하며,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아이들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또 나왔고 내용은 다르지만 형수님과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야기가 오간다.
풀기 어려운 난제들도 한방에 해결 한다. 말 부딪힘이 있었지만 결국은 수긍한다.
여러 가지 다양한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이면에는 어떠한 현상들과 작용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상황들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들을 시시콜콜 알려준다.
물론 그것은 수많은 방법 들 중 한 가지 방법일 뿐 정답은 아니다.
아마도 짜라가 알려준 방법이 정답일 확률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다.
다행이 그 방법이 맞을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 따라선 나쁜 방법 일 지도 모른다.


어떻게 짜라는 그 많은 문제들과 생각들, 풀리지 않는 의문들에 대한 답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자리를 잡지 못하고 변해가는 짜라의 가치관과 그런 생각들이 얽히면서 큰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하나에서 열까지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교 학사 1학년에 말없고 입 무거운 아이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지…….
짜라가 뿌려놓은 씨앗들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것이다.
그전에 짜라는 변해 있을 것이고, 이전에 뿌렸던 씨앗이 자신의 것인지 알아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20대가 되어서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지 했다.
가끔 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은 짜라에게 '아저씨, 저건 뭐에요?'라고 질문을 던져 짜라를 깜짝 놀라게 했다.
30대가 되어도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생각이 든다.
공이 짜라 앞에 굴러온다. 멀리서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아저씨, 공 좀 주워주세요.'라고 해 짜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공을 뻥 차려고 했는데, 빗맞아 때구르르 굴러 축구장 가까이 서있는 정자 밑으로 굴러 들어간다. 꺼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아저씨가 달려와 돌멩이로 공을 맞춰 겨우 꺼내간다. 죄송합니다.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는데, 손에든 책 제목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마흔이 좋다』라고 말한다. "아직 그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요."하며 축구장으로 달려간다.
손에든 책속에 7명의 40대 아저씨들은 저마다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들 이야기 한다.
아저씨, 아줌마가 되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이 같은 건줄 알았었는데, 아마도 그건 아닌가 보다.
아마 짜라의 나이 40이 되어도 "어른이 되려면 멀었어."라고 생각 할 것 같다.
40이 아니라 80이 되어서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만약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말이다.

책 속에선 40대가 되면 모든 게 명확해 져 꿈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짜라는 그 말을 부정하고 싶다.
살라있는 동안, 숨이 붙어 있는 동안은 꿈을 쥐고 놓아주지 않을 태다.
꿈에 도달해 보고나면, 어느새 빛이 바래 시들어 버리지만, 그럴 때면 언제나 또 다른 꿈들이 저 멀리 비쳐 보이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먼 저간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젠 흘려들을 수가 없다.
짜라도 그들이 걸어간 시간만큼을 살고나면, 별반 다르지 않은 바보 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