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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1 체 게바라와 함께

2009/02/11 체 게바라와 함께


북수원 도서관에서 『체 게바라(Che Guevara) 평전』을 빌렸다.
이 책은 최은혜님이 도서관에 기증한 책이다.
최은혜님의 은해로 책을 읽게 된 것이다.
나도 은해에 보답코자 책을 기증해야 갰다는 생각이 든다.

몇 해 전 체 게바라라는 사람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단지 쿠바 혁명을 이끌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제외하곤, 그가 누구이며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른다.

빨간색 하드보드지로 된 이 책은 그리 재밌어 보이지 않는다.
시작부터 흥미를 끌만한 요소는 없이, 그저 그런 일상들로 시작한다.
약 700 쪽으로 꾀 두꺼운 편에 속한다.
그래도 짜라를 주눅 들게 만들진 못한다.
예전에 읽으려고 목록에 들어가 있는 제목이었으므로 숙제하듯 읽기로 한다.
100쪽 정도를 넘어서자 그때부터 조금씩 재밌어 지기 시작한다.
체 게바라의 삶과 행적을 쫒으며, 짜라는 체 게바라와 함께 걷고 생각하고 분노하며 투쟁하려 든다.


누나가 셋째 딸을 출산해 진주에 가서 뜨거운 산모 실에서 하루를 묵었다.
산후조리를 위한 방이어서 부글부글 끓는 방이었지만 그런 대로 견딜만했다.
짜라는 나름 인내로 인생을 살아왔다며, 이정도 쯤은 참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다음날은 사천 누나 집에서 조카들(성준, 예림)과 하루를 보낸다.
컴퓨터를 손봐주고, 하드 보안관을 설치해 깔끔히 뒷마무리 까지.
노트북도 WinXP로 새로 깔고, 필요한 프로그램도 몇 가지 깔아 둔다.
일단 짜라가 해야 할 일들을 대 충 마무리 짓고, 다음날 사천터미널로 향한다.


버스를 기다리며 체(에르네스토) 게바라와 다시 만난다.
한참을 읽고 있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책에 푹 빠졌는지 2시 차를 놓치고 말았다.
버스표를 3시 차로 바꾸고 다시 책에 빠져든다.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게임을 하다를 반복한다.
휴게소를 들른 후부터 다시 체 게바라에 다음 행적을 뒤 쫒는다.


남부터미널에 도착해 지하철로 사당으로 향한다.
책을 읽다 사당을 지나쳐 서울대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사당으로 돌아온다.

막 체 게바라와 일다가 멕시코에서 재회하는 극적인 순간에 사건이 터졌다.

지하철 개찰구로 나오는데, 개찰구가 막아선 손을 풀지 않는다.
카드를 다시 들이대기를 여러 번 여전히 되지 않는다.
들어올 때 다른 교통카드로 찍었나 싶어, 지갑을 뒤집어 찍으니 된다. 그런데 이런 여전히 통과가 되지 않는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옆에 지나가던 여자 분이 그쪽은 들어오는 곳이라 나갈 수 없다며, 옆쪽 출구를 사용하라고 한다.
바보 같이 'X'표시가 되어있는 출구로 나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으니, 옆에서 본 사람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사당에서 7770버스를 탄다. 줄이 너무 길어서 서서 가기로 한다.
어차피 책을 읽으며 올 거면 굳이 앉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오산이었다.
앞에선 사람이 큰 덩치로 천정에 켜진 형광등을 막아서는 것이다.
ㅡㅡ;
팔을 뻗어서 빛이 닺는 각을 만들며 책을 읽으려 애쓴다.
그렇게 덩치가 만드는 빛에 사각지대와 싸워가며 체 게바라를 뒤쫓는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이 후, 처음으로 책에 몰입해서 빠져들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파라과이, 브라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파나마 등 여러 곳을 여행하며, 말 그대로 무전여행이 어떤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짜라가 유럽여행 전에 이 책을 봤다면, 유럽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로 여행을 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신의 지문』에서 그레이엄 헨콕이 마추픽추에 갔을 때도 마음이 동했지만, 체 게바라 까지 마추픽추에 가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자니 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이 동한다.
언제 기회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번 고생 200% 여행지는 라틴아메리카 마추픽추와 아마존 강이다. 체 게바라가 집에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출발했던 것처럼 짜라도 그 정도 각오는 해야 할 것이다.


이제 겨우 200쪽을 읽었다. 아직 500쪽은 더 읽어야 한다.
다 읽고 나면 어떤 느낌으로 체 게바라가 기억 될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 하다.
한국에 돌아온 후 알 수 없는 이유로 방황하던 짜라의 영혼을 붙잡아 준 사람으로 기억 되리라는 것이다.
물론 저자 장 코르미에와 기증자 최은혜님도 기억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겠지.


체 게바라는 25세에 이미 자신이 무었을 해야 할지를 알았다.
짜라는 30세가 넘어서도 자신이 무었을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 일관된 철학도, 삶과 맞서 투쟁하는 정신도 없다.
젊은 에르네스토 게바라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더 이상 자신에게 변명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