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2009/03/10 독서일기: 눈먼자들의 도시

2009/03/10 독서일기

눈먼 자들의 도시 P. 395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눈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놓는 것을 보며 흥분한다. 때로는 신경마저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돌파당하고 만다. 사실 신경은 많은 것을 견딘다. 모든 것을 견딘다. 갑옷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의사의 아내의 신경은 강철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이런 단순한 문법적 범주들 때문에, 단순한 부호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두 여자, 부정대명사로 표현하자면 다른 사람들, 그들 역시 울고 있다. 그들은 온전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여자를 끌어안는다. 쏟아지는 비 아래 미의 세 여신이다.


의미를 가진 단어들은 마법에 힘을 지닌다.
그 마법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격동시킨다.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 싸우고 하고, 결국 사랑하게 한다.
질투하고, 시기하고, 멸시하고, 좌절하고, 복종하고, 겁먹고, 눈물 흘리고, 두렵고, 떨리고, 힘겹고, 버텨내고, 견딘다.
아무것도 아닌 단어 하나에 흥분하는, 얼굴에 피가 쏠리고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아직도 '나' 하나 통재하지 못하는 짜라를 발견한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겸손해 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겸손해 지는 것이 아니고, 원래 "몰랐던 것"을 몰랐을 뿐, "몰랐던 것"을 몰랐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을 겸손하다고 표현한다면 그 말도 맞는 말이지만, 겸손이 아니고, 사실을 그대로 시인 하는 것이다.

형용사 하나에 흥분하는 짜라가 되지 말 지어다.
어쩌면, 고독으로 들어가는 문을 선택 한 섣부른 결론 일까?
선택은 대부분의 경우 후회를 동반 한다.
그래도 항상 후회를 감수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단순한 아집이 아니기를…….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