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부 밥』 P. 102
투덜대지 말고 기도하라
짜라는 교회를 17년 동안 다녔다. 아마도 태어나면서 부터 다녔고,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까지 다녔던 것 같다. 교회를 다니는 대에는 다른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것은 마치 밥을 먹고, 숨을 쉬며, 물을 마시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상적인 행동에 행복이나 즐거움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게 우습게 생각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조금은 불편한 의무 같은 것이었다. 그랬다. 어떤 믿음도 신앙도 없었다. 그랬기에 그 믿음의 빈자리엔 죄책감이란 그림자가 짙은 빛깔로 드리워져 있었다. 기도도 곧잘 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잘 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누군가와 이야기 하듯이, 혹은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라 옮기기도 했었던 것 같다. 교회를 기자 않게 된 계기는 조금 미스터리하다. 대학을 가기위해 공부에 전념한다는 핑계 아닌 핑계가 17년 교회생활을 접는 빌미가 되었다. 그 훨씬 이전부터 교회를 가지 않겠다는 생각은 어렴풋 있었지만, 그것을 실천할 만한 자신감이나 용기는 없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대담해 졌다. 사실 그때 열심히 공부를 하긴 했다. 단과학원에 세과목을 신청해서 들었다. 90분짜리 수업이었으니 쉬는 시간 까지 합하면 5시간 가량 되는 학원에서의 생활을 2년 가까이 쉬지 않고 이어갔다. 또한 방학에는 아침 6시 수업도 거의 빠짐없이 다니려 노력했다. 아무리 몸이 힘들고 아파고, 하루를 거르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과의 약속이자,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라, 정말로 한 번도 빠지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학원 의자에 시체처럼 늘어져 앓는 한이 있어도 결석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과의 약속은 그렇게도 지독스럽고 무서운 것이다. 물론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기도는 명확한 것이다. 그러나 무교인 사람에게 조금 당황스러운 단어이다. 종교가 없는 짜라는 기도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기도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와의 대화다.
내 안에는 나라는 존재 말고도 생각하는 존재가 여럿 있다.
얼마나 많은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5명은 있고, 아마도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기도는 지금의 나의 상황을 스스로에게 이야기 하게 한다. 그래도 문제의 본질을 좀 더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고, 내 안의 다른 생각하는 존재에게 그 문제를 고찰 하도록 만든다. 그럼으로 써 그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고, 그 의견들 중에는 정말로 보석만큼 값진 인식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여러 사람과 한 가지 문제를 가지고 논의 하는 것과 같다.
물론 서로 간에 대립을 하게 될 때도 있다. 그래서 고뇌에 빠지고, 인생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는 좀 더 나은 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혼자서는 아무리 노력해서 얻을 수 없는 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내면의 생각하는 자에게 지금 나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본다. 어쩌면, 새로운 살아갈 의미를 발견 할 지도 모르지. 또 어쩌면, 행복의 본질에 한발 더 다가갈 수도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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