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8/25 짜라일기: 가만히 길을 돌아보며……. 후배가 교통사고로 입원을 했다. 퇴근길에 잠깐 들러 말동무를 해 준다. 교통사고라곤 하지만, 큰 사고는 아니다. 공원 앞에 있는 한차선 정도 나올만한 골목길을 가던 중 길 끝에서 앞서가던 차가 멈췄다, 자전거를 타고 따르다가 함께 멈췄는데 불현듯 그 차가 후진을 해온다. 그런데 그 차가 뒤에서 있는 자전거 탄 사람을 보지 못했는지, 자전거를 무시하고 후진으로 달려들었다. 깜짝 놀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전거에서 뛰어내렸다. 자전거는 넘어진 상태로 아스팔트에 2m정도 차 뒤 범퍼에 밀려, 끌리고 일그러졌다. 사고의 전말은 이렇다. 그날 저녁에 만났는데, "죽을 뻔 했다"고 운을 띠우며,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사건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몸은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몸 상태를 내일까지 지켜보라고 조언을 하는데, 사고를 당했던 R군은 몸은 전혀 다치지 않았으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큰소리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일 두고 보라고 이야기 한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몸이 아프다고 하면서, 목소리에 핏기가 싹 빠졌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다. 그게 지난 금요일 이었으니 3일 만에 결국 입원까지 하게 됐다. 평소에 자기주장 강하고, 고집도 보통이 아닌 놈인데, 지입으로 말해놓고 그걸 범벅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해 좀 더 배웠겠지. 항상 자기가 생각한건 다 옳다고 주장하는 놈이라, 자기가 경험해 보지 않은 걸 쉽게 제단하지 말라고 하면서 '좋은 경험 했다'생각하라고 한마디 던진다. 병원에 입원해 하는 말이 그때 사진을 찍지 않은 게 후회가 된다고 한다. 금요일 저녁 술자리에서 '사진은 찍었냐?'라는 물음에 자기는 나쁜 사람이 아니니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했던 놈이 하는 말이다. 그게 '나쁜 사람'과는 상관없다고 해도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 탈이 나고 나서야 형들 하는 말이 맞구나 한다. 아마 몸이 아프지 않았으면, 지금도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한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만으로 모든 걸 판단한다.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은 머리로 생각하고, 그 생각이 다른 경험을 빗대었기 때문에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서 맞을 때도 분명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무수히 많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만 않은 것이다. 살면서 그런 사람들을 자주 본다. 타협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일을 하는 건 정말 힘들다. 보통은 경험을 해도, 그 한 가지 경우에만 경험을 축적했을 뿐 또 다른 상황으로 옮겨가면 여전히 자신의 생각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잘 생각해 보면, 예전에 짜라도 그랬었다. 평소 논리가 강하고, 그 논리가 많은 경우 맞다는 걸 경험하면, 모든 것이 논리로 통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언젠가 부터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여러 가지 책을 많이 읽으면서, 특히 자기개발 서적이나, 심리 치료서적, 인간관계론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서서히 변해 간 것 같다. 직접적인 경험만으론 그런 성격을 바꾸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우물 안에선 아무리 노력해도, 네모나게 조각난 하늘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직접 그런 상황에 있어도 봤고, 지금은 탈출을 했으니 그런 사람을 이해 할 만도 한데, 막상 그런 사람과 이야길 하다보면 대하기가 힘들다. 예전에 그런 짜라를 상대하던 사람도, 짜라란 말이 통하지 않는 벽 앞에서 얼마나 힘들어 하고 안타까워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부끄러워진다. 퇴근 후 주말에 사놓은 냉장고 속에서 시원해진 와인 코르크를 따서 짜라 다용도 전용 컵인 크리스탈컵에 반을 채운다. 처음 포도주를 마실 땐 맛을 몰랐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다는 드라이를 마셨다. 달콤과 떫음을 1에서 5까지 등급을 매기면, 4나 5정도 등급을 산다. 예전엔 그걸 마시면, 얼굴이 찡그려지고 이게 맛있어 먹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맛은 모르겠다. 그런데 그 떫은맛에 익숙해 졌는지 길들여졌는지 이젠 그다지 떫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떫은맛 끝에 약간 달콤하게 혀를 감싸는 느낌이 좋아졌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처음은 조금 까칠 하지만 다가설수록 그 사람의 담백함을 알아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조금은 그런 느낌을 알아가는 느낌이다. 요즘 까다로운 사람과 자주 연락을 하고 있다. 대하기가 쉽지 않다. 착한데 까칠하고, 따듯한데 차갑고, 냉소를 머금었는가 하면 이내 글썽이는 그런 사람이다. 우연히 만났고, 어렵게 다가섰고, 짜라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아마도 예전의 짜라였으면 그런 사람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멀리했으리라. 그러나 시간은 짜라를 변화시켰고, 세월은 짜라에게 견디는 힘을 주었다. 투정 많은 그를 얼마나 감당 할 수 있을지, 자신조차 알 수 없다. 그러나 예전처럼 쉽게 물러서지 않으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인지, 혹은 그들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는 아닌지……. 그들이 어떤 이유로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을 하고, 몸짓으로 표현해 내는지 헤아려 본다. 어렵다. 어렵지만 한 번 더 헤아린다. 그들은 짜라의 이런 마음을 알런지, 안다면 어떻게 할런지……. 수많은 생각과, 답 없는 질문들……. 인생은 답 없는 질문들 투성이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질문들인지,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질문들은 끝을 모르고 태어나고 음미되고 소멸해 간다. 가금 끈질긴 질문들은 몇날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며, 답을 재촉하며 머리를 아프게 하고 송곳으로 가슴을 따끔하게 후빈다. 힘겹게 답을 내지만, 그게 답인지 확신은 없다. 단지 지금에 최선이라고 어렴풋 생각한다. 후회가 없을 순 없다. 다만, 후회 하지 않으려 노력 할 뿐이다. 크리스탈컵 반잔으로는 지금에 기분을 채우기에 부족했나보다. 기어이 냉장고로 다가가 사랑스런 손길로 아스라이 문을 열고, 포돗빛 포도주 병에서 개울물 소리로 2/5만큼을 채운다. 떫음 속에 감춰진 달콤함인가. 까칠함 속에 가라앉은 부드러움 인가. 그것으로 빈 마음을 채워본다. 지친 마음은 샤워로 씻어내고, 달콤한 잠을 불러 들여야 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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