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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1 문 닫은 도서관

문 닫은 도서관

2012/03/01
짜라일기

요즘은 시간이 무척 많다.
그래서 책을 무지 많이 읽는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아무리 많이 읽어도 욕심을 다 채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읽을 책 목록'을 뒤져서 빌릴 책 들 목록을 뽑고, 색인코드를 확인하여 일정표에 메모한다.

통찰력을 키워주는 밸런스 독서법 |  029.4-ㅇ715ㅂ
버블의 기원 | 320.942-ㄹ614ㅂ
인생이 왜 짧은가 | 160.256-ㅅ378ㅇ
침묵으로 가르치기 | 373-ㅍ94ㅊ
료마가 간다 1 | 833.6081-ㅅ766ㄹ-1


세수를 하고, 옷을 갖춰 입었다.
반납할 책들을 가방에 가득히 넣고 버스 편을 확인하면서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구로도서관.
지난번에 찾는 책이 있었는데 하안도서관에는 그 책이 없어서 조금 먼 구로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그 이후로 책을 반납할 때마다 다시 책을 빌리다 보니, 가까운 도서관을 두고 자꾸 멀리까지 책을 빌리러 가게 된다.
구로도서관은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3주간 책을 빌릴 수 있는 것이다.
하안도서관은 2주 후에 책을 반납해야 한다.

버스정류소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내 버스한대가 들어오는데 짜라가 기다려야 하는 버스 5714번이다.
덜렁거리는 옷을 손으로 눌러 잡고 냅다 뛴다.
버스 문에 다가서니,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버스를 탄다.
보통은 무질서하게 깔때기를 통과하는 모래처럼 질서가 없는데, 오늘은 이상하다.
그래서 줄의 바깥쪽에 선 짜라는 잠깐 생각을 하다가 버스에 탄다.
구로시장에서 잠시 내렸다가 6411번 버스로 갈아탄다.

도서관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도서관 문이 닫혔다.
순간 난감함이 등골을 서늘하게 식혔다가 허리를 거쳐 발밑을 뚫고 땅으로 달아난다.
아, 오늘은 책 반납만하고, 대출은 하안도서관에서 하기로 했었지.
하면서 안도하며, 반납함에 책을 한권씩 두 권씩 넣는다.
휴관일은 매주 수요일인데 오늘은 3.1절이라서 쉰단다.

버스를 역순으로 갈아타고 동내에 내려 하안도서관에 찾아간다.
그런데 잠깐의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다.
아까 도서관에서 의혹이 잠깐 들었으나 애써 외면했던 사태에 직면하고 만 것이다.
도서관 현관문까지 걸어가 휴관 일을 확인한다.
도서관은 오늘도 쉬고, 금요일인 내일도 쉰단다.
이런 엄청난 사태가, 그렇다면 짜라는 오늘도, 내일도 책을 볼 수가 없다.
약간의 짜증과 아쉬움이 두서없이 마음속을 달음질치자, 이내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이 원망을 누구에게 돌릴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무렴 어때 하는 생각으로 다른 생각을 덮어 버린다.

마음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추후의 사태에 대한 대책을 궁리한다.
그래, 지난번에 읽다가 만 책이 한권 있었지.
"거인의 무한능력"시리즈 중에 한권을 아직 다 읽지 않았다.

그려, 그거면 됐다.

오늘에 저녁 메뉴는 스파게티로 한다.
송이버섯과 브로콜리 빨건 것과 노란 것을 가까운 마트에서 사가지고 책 대신 가방을 채우고 가벼운 걸음거름으로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