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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5 책이 무척 잘 읽힌다는 걱정

책이 무척 잘 읽힌다는 걱정

2012/03/15

짜라일기


요즘 책이 무척 잘 읽힌다.
동시에 생각도 무척 많아졌다.
생활이 좀 여유로워 진 것 일까?

그런데 실상을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6개월 정도 걸릴 프로젝트를 3개월로 잡아놓고 쪼아 붙이고 있다.
개다가 책읽기가 재밌어서 자꾸 읽다보니 안 그래도 빠듯한 일정이 더 뒤처지는 듯 한 느낌도 든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옮겨 적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기가 부담스러워 져서 자꾸 미루게 된다.
뭔가를 자꾸 미루다 보니 조바심이 나고, 짜라가 지금 잘못된 길로 들어선 건 아닌지 뒤돌아보게 되고 불안해 진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선택은 아닌가?
보통은 '책이 잘 읽힌다.'는 느낌이 오래 유지 되지 않는데 이번엔 이상하게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런 사소한 변화가 소소한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만, 한편으론 변화에 대한 보이지 않는 두려움처럼 몸을 떨게 한다.

좋은 책들이 많이 걸려든다.
『인생이 왜 짧은가』를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루키우스 아나이우스 세네카를 인생의 멘토로 선택하기 까지 했다.
여태까지 짜라 인생의 멘토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세종대왕 딱 두 사람이었는데 세 번째 멘토가 생긴 것이다.
책을 읽으며 한편한편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픈 욕심에 몸을 들썩였다.
그러나 실제로 일기에 쓴건 딱 한편 뿐이다. 나머지는 생각만하고 조바심에 굴복하여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했다.

책을 반납하는 날, 정리하지 못한 것들 중 기억에 남는 몇 부분을 컴퓨터로 옮겨 적었다. 그리고 특히 기억에 남는 산문집인 『행복한 삶에 관하여』는 많은 부분을 다 칠 수가 없어서 정성들여 사진으로 남겼다.
언젠가 또다시 먼 곳을 정처 없이 떠돌게 될 일이 생기면 이 '책'을 동반자로 가장 깊숙이 벗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 벅찬 느낌을 주는 책이다.

운명처럼 2천 년 전의 사람이 지금의 짜라를 위해 준비한 책인 지도 모른다.
이 정도는 억지는 부려줘야 진정한 개인주의라고 주장 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 미친 듯 바보 같은 미소를 지어본다.


독서모임에서 K씨가 게시판에 인생의 고민을 남겼다.
재밌다. 사람들은 살며 살아가며 자꾸만 의문들을 던지게 된다.
짜라는 그 글에 나름의 답을 달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짜라가 답을 줄만큼 대단하지도 않거니와 준다 한들 혼란만 줄뿐 부질없는 행동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독서토론을 파하고, 술자리로 옮겨서 비슷한 이야기가 다시 나왔는데, 정의에 대한 담론 이다.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책에서도 나왔듯이, 정의는 무척 정의하는 어려운 담론이다.
짜라는 『도덕적 암살자』에서의 정의를 어느 정도 지지한다.
K씨는 흔들리고 있었다.
뭔지 스스로의 주장을 깔끔하게 설명하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의 반론에 '그때그때 달라요' 라는 애매한 답을 하는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짜라는 짓궂은 장난을 하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K씨의 주장을 스스로 돌아보게끔 부추긴다.
짜라는 망설임 없이 주장을 펼친다. 딱히 ‘맞다‘라고 할 수 없는 주장이지만 그것이 마치 주장의 핵심이라는 듯이 으스대며 이야기 한다.
흔들리는 갈대가 된 K씨는 결국 어떤 결론에 도달 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딘가에서 스스로의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가고 있을 것이다.

K씨는 인생 이라든지, 정의, 옳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냥 그런 생각 없이 즐기며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라고.
만약 소크라테스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면, 소크라테스를 되물었을 것이다.

"좋소, 그렇다면 우선 '좋은 것'이란 무엇인지부터 정의해야 갰지요?
'좋은 것'이란 어떤 것이오?"

결국 소크라테스는 기어코 K씨에게 이런 답을 끌어 낼 것이다.

"선생님이 마법으로 저의 생각에 두껍고 어두운 안개를 쳐서 당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가 살아 있는지 조차도 확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저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아는 것이라곤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인생이란 참으로 재밌는 연극과도 같은 것이다.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재밌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재밌다. 재밌어 하다 보니 잘하게 되고, 잘하다 보니 그걸 하면 돈을 주는 사회 구조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재밌어서 글을 쓰면 그 글을 읽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짜라의 글을 읽고 '고맙다' 라거나 '미친놈'이라는 긍정적인 덧글을 달아준다.

짜라 인생의 시계는 지금 8시를 지나 5분의 언저리를 흘러가고 있다.
뭔가를 잘해야 갰다는 조바심의 한편에선 그렇게 조바심치지 말라고 '세네카'가 이야기 하고, '카이사르'는 아무걱정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데로 그냥 밀고 나가라고 한다. 걱정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며 그것은 나의 경험담이라고 까지 이야기 하며 강조 한다.


모든 게 분명하다면 어떻게 될까?
『걸리버 여행기』에는 거짓말이 없는 "말의 세계"이야기가 나온다.
거짓말의 계념을 설명하자 사람들은 그런 게 있을 리 없다며 잘라 말한다.

지금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모든 게 분명한 세계에 있는 나를 생각해 보길 권한다.
그러면 행복해 질까? 아니면 별반 다르지 않을까?
짜라는 지금도 행복하기에 그런 생각은 안 해도 되지만 한번 해본다면, 모든 게 분명한데 왜 짜라에게는 분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며 혼자 머리를 싸매고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가볍게 뒤통수를 벽에 부딪치며 상념에 잠길 것 같다.


밥벌이가 걱정이다.
빨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어서 기간에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금 놓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나의 조바심이 걱정이다.
아까운 시간을 아껴 써야 함을 알면서도 아끼려 하지 않는 짜라가 걱정이다.

이 모든 걱정해야 할 걱정들이 있음에도 짜라는 대담하게도 모든 걱정들을 가볍게 생각하고 넘긴다.
그래도 지금 이순간이 행복하다. 면서…….


그건 그렇고 말이야. 오늘 저녁엔 뭘 먹지?
이런 걱정거리가 하나 늘었다.
이번엔 가볍지 않은 걱정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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