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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08/11/02 2008년의 특별한 경험 #3

2008/11/02
2008년의 특별한 경험 #3

2008년도 이제 두 달 남았다.
벌써 1년이 다 지나간 듯하다.

2008년은 짜라에게 특별한, 아주 특별한 3가지 경험을 선물했다.

1. 처음으로 내 의지로 사표를 썼다.
2. 단순한 희망사항이던 여행을 결정 했다.
3. 처음으로 무협지를 보았다.


2. 유럽여행, 그 위험천만함이여.

짜라는 여행을 대수롭게 보지 않았다.

'여행' 까짓것 그냥 하지 뭐.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 잔~아~!
그렇다.
얕잡아 본 놈에게 된통 당한 것이다.


정든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계획했다.
아무것도 정한 건 없다.
미국에 갈지, 유럽에 갈지, 아니면 호주에 갈지 조차 정하지 않았다.

유럽에 가기로 마음을 잡았다.
비행기 표를 알아보니, 30일짜리보다 45일 왕복편이 저렴해 일정은 45일로 결정했다.
유럽엔 20개도 넘는 나라가 있고, 나라 하나엔 50곳도 넘는 도시들이 있다.
여기서 부터 혼란은 시작되었다.
쉽게 결정하고 떠날 수 있는 여행이 아니기에 그제야 신중해졌다.
특별한 여행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절치부심하게 되었다.

어느 책을 보니, 단순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기분으로 떠나면, 쉽게 무력증에 빠지고, "왜 이 짓을 사서 하나?" 후회를 한다고 했다.
가장 좋은 계획은 적당히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형식은 계획을 따르되, 정확히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고 즉흥적으로 상황에 맞서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은 보고도 못 본 샘이 되는 것이다.
계획하지 않고도 안다면, 굳이 수고 할 필요가 없겠지만, 짜라가 유럽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10년 전부터 읽었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전부이다.
그것이라도 머리에 남아 있으면 야 좋겠지만, 10년 이란 세월은 그 단편 조각조차도 지워버려 희미할 뿐이다.


일단 5개국을 돌기로 했다.
욕심은 더 많은 나라를 돌고 싶고, 한 나라에서 오래 머물고 싶다.
둘을 다 이루려면 많은 시간을 여행에 투자하면 된다.
그러기엔 짜라에게 겁이 너무 많다.

이탈리아, 독일에서 각 9일
스위스, 체코, 오스트리아 에서 각 5일
9 * 2 + 5 * 3 = 33일

왕복 비행 = 2일

그러면 10일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그것은 짜라의 뒷주머니로 예비한 것이다.


짜라가 유럽여행을 결정하면서, 당연한 듯 교통수단을 '오토바이(모터사이클)'로 정했다.
뭐가 당연한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면서도, 그게 당연하다고 우긴다.
짜라답다고 할 밖에…….

벌써 11월.
10월 중순에 여행을 결정하고, 일주일 동안 계획 잡고 떠나려 했는데, 벌써 11월이다.
계획은 윤곽만 잡았을 뿐 아직도 구체화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아무리 빨라도 10일 전에 떠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정이 45일이니, 돌아올 땐 12월 말일태고, 그 기간은 무척 추울 것이다.

가장 큰 걱정은 계획된 도시에 눈이 오는 것이다.
눈이 내려, 녹지 않고 쌓이면, "당연한 교통수단"을 사용할 경우 목숨을 내 놓아야 한다.
그렇게 여행 아닌 '사서하는 고생'을 준비하며, 고민만 깊어간다.


일기예보를 보니 독일에는 벌써 눈이 내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독일, 체코는 겨울에 잦은 비가 내린다"한다.

애초에 부푼 마음으로 여행을 결정했지만, 지금은 사지로 나가는 군인 된 마음으로 밤잠을 못 이루고 번민에 빠져있다.
어쩌면, 여행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더욱 목을 조이는 기분이다.
동행이 있다면, 이렇게 쉬 갈등하지 않을 탠데 하는 마음이 변명처럼 들기도 한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라."고 했다.
시커멓고 거대한 이 공포라는 놈과 당당히 맞서리라.
그 결정이 목숨을 거는 도박일 지라도.


도서관에서 8권의 여행 책자를 빌렸다.
엄청나게 많은 관광지들과 관련된 상황 설명들을 접하면서, 세부계획을 새우고 있다.
"너무 완벽하려 애쓰는 거 아니냐!"고, 스스로를 다독 이며 끝을 향해 한발씩 내딛고 있다.
그 끝은 또 다른 시작과 맞닿아 있고, 새로운 시작에 끝에는 더 새로운 인생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포기 할 수 없는 것 같다.
겁을 단박에 먹었지만, 담담하게 뚝심있게 가자.
후회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