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5
유럽여행: 인생이란 잔인 한 것
짜라의 오토바이 유럽여행
독일 뒤셀도르프, 20일째
민박집 가까운 곳에 있는 괴테박물관에 간다.
작은 박물관이라 무료일거라 생각했는데 입장료로 3유로를 받는다.
괴테의 일가친척들 초상화들이 가득하다.
괴테가 쓴 글이나 편지들도 전시되어 있다.
세계 각국에 번역되어 출판된 괴테의 책들도 전시되어 있다.
일본어, 중국어 책도 보인다.
한글은 보이지 않는다.
잘 그리진 못했지만, 괴테가 그린 그림도 전시되어 있다.
뜻은 모르더라도 읽어나 보자 생각하고, 친필을 읽으려 애써 보지만 당최 알아 볼 수가 없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괴테는 프랑크푸르트에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 괴테 생가가 있다.
그럼 여기 있는 괴테 박물관은 뭐지?
공원을 따라 거닐다.
공원 가운데에 오토바이를 새워 놓고, 공원을 거닌다.
공원은 중간 중간 차도로 갈라져 있다.
차도를 건너 6블록정도 되는 공원들이 이어져 있다.
이곳에도 오리와 백조들이 살고 있다.
공원 오수 가까이 붙어있는 집이 하나 있다.
뭔가 하고 유심히 보니, 백조들을 보살피는 곳이다.
도심지 가운데 있는 곳이라서 백조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문제가 새기나 보다.
공원의 끝에 다다르니, 쿤스트(예술)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으로 향하는데, 지나는 길에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즐겁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무슨 졸업식이 있었는지, 하나같이 상기된 얼굴이다.
내가 지나가자 '포토, 픽쳐'라고 외친다.
처음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하다, 몇 발짝 지나쳐서야 '사진 찍어달라는 소리구나'하고 뒤를 돌아본다.
그런데 이미 다른 학생이 다시 나와 사진을 찍고, 또 다른 한명이 나와 또 찍고를 하고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독수리 머리 모양의 조형물이 여럿 놓여 있다.
한쪽은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쇠를 용접해 만든 것이다.
박물관은 입장료가 8유로에 가방과 옷 보관료로 1유로, 총 9유로가 든다.
생각보다 비싸다.
박물관 건물은 무척 크다.
여기는 유리공예품, 중세미술, 현대미술, 그리고 각종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는 종합 박물관 인 듯하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유리공예품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어 눈을 즐겁게 한다.
실용성을 중시한 잔이나 그릇 류가 많지만, 실용성과 상관없는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상당한 수를 차지한다.
적어도 3시간은 머문 듯하다.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민박집 부부
저녁은 민박집 주인 부부와 함께 한다.
맥주에 양주까지 곁들이다.
특별 요리로 고등어조림이 나왔다.
맛있게 하셨는데, 생선 요리는 잘못한다고 겸양을 하신다.
독일 유치원 교육에 대해 이야기 하셨다.
유치원에 가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생활을 배운다.
함께 모여서 놀고, 자기가 논자리는 스스로 치워야 한다.
또 식사한 후 자기가 사용한 식기도 스스로 씻어 놓아야 한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유치원 풍경이다.
초등학교는 4학년 까지 다닌 후 3단계인지 4단계로 분류되어 다른 학교로 가게 된다.
1등급은 가장 뛰어난 아이들이 가는데 보통 10명에 한명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 나머지 등급들도 그에 따라 아이들이 분류되는데, 모두 선생님이 결정하고 아이들은 그에 따라 학교를 배정 받는다.
한국 같으면, 더 좋은 곳으로 가기위해 선생님께 때를 쓰겠지만, 여기는 그렇게 하지 않는 모양이다.
한번인 이모님 아시는 분이 때를 선생님께 사정을 해 한 단계 높은 곳으로 학교를 배정 받았는데,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결국 학교를 옮겨야 했다.
또 다른 큰 특징이 있는데, 유치원에서 과외 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부모님께 당부를 드린다고 한다.
학원 같은 곳에서 미리 교과 과정을 배우고 온 아이들은 쉽게 수업에 흥미를 잃고 수업시간에 산만해 지기 쉽다는 게 그 이유다.
이런 교육환경을 한국과 직접 비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점은 조금씩 수용해서 도입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무었지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선별하는 데는 이견이 많겠지만,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의 교육 현실을 볼 때,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돌아본 것보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하루다.
한국에 대해 이야길 하면 모두 걱정뿐이다.
정치, 경제, 사회, 통일 등 걱정 안 되는 것이 없다.
독일에 온지 35년도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저씨는 74년도에 뒤셀도르프 광산에 취직되어 독일로 오셨다.
이모님은 80년도 초반에 간호사로 취직해 나와 있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독일에 왔다가 아저씨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두 분 다 무척 소달하시고 겸손하시다.
따로 격식을 차리시지도 않고, 짜라를 편안하게 대해 주셔서 무척 편하다.
자식을 세 명 두었는데, 첫째 딸이 작년에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는데, 한번 실수를 해 장학금을 받지 못하자,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게 미안해, 알바를 해 스스로 학자금을 마련해 다니는 부지런함을 가졌다.
혼자서도 뭐든 잘하는 든든한 맏딸이었는데, 평소에 무리를 해서 그런지 간에 문제가 생겨 결국 부모님 곁을 떠났다고 한다.
짜라도 자력으로 학비를 벌고 공부를 하는 것에 찬성을 하는데, 일이 그렇게 되고 보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부모님들은 그일 이후로 나머지 두 아이들에겐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한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받으면서 인생을 배워 나간다.
글을 잘 쓰진 못하지만, 책을 하나 쓰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들도 많이 들려주신다.
진정으로 짜라를 대해 주시는 그분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민박집이 있는 이 건물 주인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주셨다.
건물 주인은 할머니 인데, 이 건물 외에도 두 채가 더 있다.
그런데, 그분 딸이 이 건물 청소를 한다.
한번은 이모님이 청소하시는 딸과 악수를 나눴는데 손을 잡아보곤 깜작 놀랐다.
손이 너무 딱딱해서, 사람 손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일을 많이 했으면, 손에 그렇게 굳은살이 많이 박였을까?
짜라는 굳이 좋다 나쁘다 편견을 두지 않는다.
단지 독일과 한국에 문화의 차이를 직접 목격한 느낌이 든다.
만약에 짜라가 책을 쓰게 된다면, 이모님께 꼭 그 책을 선물해 드려야겠다.
진정으로 신뢰를 보여주신 호텔두레 이모님을 잊지 못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