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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08/12/07 유럽여행: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2008/12/07
유럽여행: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짜라의 오토바이 유럽여행
독일 쾰른, 22일째

05:30
아침 일찍 출발하려고 시간을 맞췄지만, 알람을 끄고는 다시 정신을 잃어버린다.

06:00
두 번째 알람 소리가 들린다.
정신이 들었지만, 피곤해서 일어나는 게 버겁다.
어제 계란을 잘못 먹었는지 설사를 두 번 했더니,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은 듯하다.
5분후 다시 알림을 두 번 듣고야 억지러 일어나, 샤워를 한다.

06:40
민박 이모님이 식사를 준비해 놓았다고 먹고 가라고 한다.
어제 저녁에는 너무 아침 일찍 이라 준비가 힘들다며, 빵을 주겠다고 하셨는데 타지 나온 짜라가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아저씨의 각별한 부탁이 있었는지 평소만큼은 아니지만, 기본 반찬만으로도 진수성찬을 차려주셨다.

07:00
예정된 출발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목적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종이에 옮겨 적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제 만들어 놓은 길 찾기 일정표들이 모두 사라졌다.
ㅡㅡ;

하는 수 없이, 숙소 정보와 코블렌츠를 거쳐 장크트 고아르까지 가는 길안내 도로 목록을 다시 뽑는다.
GPS만 되어도 이런 수고는 필요 없는데, 이것 때문에 빼앗기는 시간이 엄청 많은 듯하다.
안되는걸 가지고 한탄하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 없으면 없는 데로 있을 때와 다른 여행이 준비된 것이라 생각하자.

09:00
준비하는데 꼬박 2시간 걸렸다.
출발: Koeln - Koblenz (108KM)
경로: B265 - A4 - A555 - A565 - A61  - A48 - B9 - B49


다행이 비는 오지 않는다.
지금도 짐을 꾸리고, 오토바이 짐받이에 묶어 올려놓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나마 속도가 붙었다.
게다가 비도 오지 않으니, 일이 더욱 수월하다.


처음으로 비오지 않는 고속도를 달리는 기분은 아주 좋다.
정말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있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마음도 편하고 기분도 상쾌한 주행이다.

130KM 속도까지 내본다.
큰 문제없이 잘 나간다.
한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오토바이가 대략 30K 이상의 속도를 내면 이놈이 한 옥타브 높은 솔음을 토하면서 달린다.
오토바이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지, 원래 빨리 달리면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부르는 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속도가 빠르면 주위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자동 경보장치가 작동하는 건지 알 길이 없다.
바이크가게에 전화해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어쩌랴.

100KM/h 속도 이상부터는 목을 뒤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힘주어 자세를 유지하는데, 130KM/h 까지 가면 목이 무척 아프다.
나중에는 속도를 낮춰도 그 아픔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날씨까지 추우니, 좌우로 고개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어제 빗길을 달린 후 이중 장갑을 분리해 말리지 않고 그냥 뒀는데, 그게 화근이 된다.
100KM/h 속도가 되니, 찬바람이 장갑 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이다.
이런걸 보고 수냉식이라고 한다.
바람의 장갑 바깥외피를 식히면, 그 찬 기운을 물이 흡수해서 내 손에까지 공급하는  것이다.
열이 많이 나는 엔진에겐 무척 유익한 것이지만, 짜라에겐 얼음물에 손 담그고 있는 좋지 않은 짜릿함을 준다.
아무리 귀찮아도 이중 장갑 말리는 것은 잊지 말지어다.


[고속도로에서 기름이 떨어지다]
1시간쯤 신나게 달렸을까, 트럭한대를 막 추월했는데 갑자기 이놈이 속도가 줄어든다.
추월 할 땐 속도를 더 내 줘야 하는데, 이런 낭패를…….
결국 갓길로 차를 세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기름이 떨어졌다.
약 7L를 넣었는데, 170KM 정도 밖에 못 달리나? 아니지 리터당 24KM 정도면 너무 나쁜 것도 아니다.
처음 주유할 때 경황이 없어 기름을 가득 채우지 못한 것이 화근이다.
200K 마다 한 번씩 주유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개다가 100KM/h 이상의 속도로 달리면, 연비가 급격히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하다.
앞으론 정속운행을 해야 할까?
길에 따라 150KM/h 속도로 달리는 차들도 있다.
100KM/h로 달리면 더 위험 할 수도 있다.

일단 비상용 기름통으로 전환하고,
가장 가까운 출구를 찾아 나간다.
시골마을이 나온다.
상점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10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교회로 들어간다.
잠깐 들렀다 갈까하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도 주유소를 찾을 수 없어, 다음 마을로 간다.

다음마을 역시 주유소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상점들이 드문드문 보이기에 그중에 열려있는 빵가게에서 주유소를 물어본다.
1Km 쯤 떨어진 Sinzig 마을에 주유소가 있다고 알려 준다.

마을에 들어서서 사거리에서 좌회전, 또 좌회전 해 300m 가면 있다던 주유소를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 있는 길이란 길은 다 쑤시고 다닌다.
일요일 오전이라 길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성당에 가서 기도드리는 건가?

가끔 강아지를 앞세워 조깅하는 사람들이 눈에 뛴다.
몇 번을 물어서야 고속도로에서 내려오는 입구에 있는 주유소를 찾을 수 있었다.

10:30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줄 탠데, 영어단어도 생각이 안 나서 받지 못했다.
흘깃 몇 리터가 주유되었는지 확인했는데, 10.25유로 돈을 치르고 나니,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주유한 기름 양을 기억해야 연비도 계산하고 다음번 기름을 언제 넣어야 하는지도 확실한데, 대략 9L 조금 넘게 들어간 듯하다.
주유 후 계기판을 확인한다. 오토바이를 산후 지금까지 총 190KM 를 달렸다.
일단 비상기름 사용한 20KM를 제하고 170에서 150을 더한 320KM 정도에서 기름을 한 번 더 넣어야 갰다.

이제부터는 계획한 경로에서 벗어난다.
Koblenz란 도로이정표를 보고 따라간다.
B9 국도다.
독일의 도로는 A는 고속도로(파랑), B는 국도(노랑), L은 지방도(흰?).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왼쪽으로 라인 강이 흐르고 있다.
올 커니, 이게 바로 강변도로 구나.
기름이 떨어진 덕분에 이렇게 강변로로 달려보게 되었다.


강변을 따라 좌우로 산들이 병풍을 쳤다.
산꼭대기 전망 좋은 곳마다, 성이 한 체씩 보인다.
시선을 빼앗기고 싶지만, 목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
억지로 돌리면 돌아가겠지만, 혹시나 핸들까지 돌아가지 않을까 겁이나 눈길로만 쫒는다.

사진으로 보아 익숙한 고성들이 라인 강 허리를 한번 돌때마다 두, 세 개씩 거리를 두고 나타난다.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날이 추우니 그것마저도 귀찮아 그냥 달린다.


어느 순간 Koblenz 가 이정표에서 보이지 않는다.
가까운 주유소에 차를 세운다.
왼쪽의 받침다리를 새우다 그만 실수를 해 오토바이가 왼쪽으로 넘어졌다.
넘어지는 쪽에 10cm 정도 솟은 길이 있어, 그대로 왼쪽 앞 깜빡이가 박살이 나버렸다.
간만에 사고 한번 쳤다.
난감하다. 앞쪽 깜빡이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긴 하지만, 없으면 그만큼 위험해진다.
혹시 경찰의 단속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혹시가 아니고 확실하겠지.

정비소를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시간 또한 많이 빼앗길 것이다.
애라 모르겠다.
내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 민박집의 도움을 받아 고치기로 한다.

주유소에서 현재 위치를 물어보니 여기가 코블렌츠란다.
^^; 무사히 도착은 한 샘이다.
찍어놓은 관광지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시내 도로는 역시나 만만치 않다.
아차, 잘못 들어서서 라인 강을 왕복해서 가로지른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중에 고속도로에서 안개가 시야를 가리긴 했지만, 비한방울 오지 않는 좋은 날씨다.
오랜만에 햇빛도 간간이 구름 사이로 새어나온다.

주차장에 차를 새워놓고, 귤 하나를 짜라에게 준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바이크 여행을 자축한다.

방위를 살핀 후 뭘 볼까 고민을 하며, 지도를 본다.
'도이치 엑크'라는 강이 만나는 지점이 눈에 뛴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오른쪽으로 성당이 들린다.
12시 종을 친다.
사람들이 교회 입을 벌리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12시에 예배라도 있나보다.
짜라도 덩달아 들어가 본다.

신은 빛을 실어하는지, 이 성당도 빛이 많지 않아 어두침침하다.
스테인 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은 실내를 밝히기에 너무나 부족하다.

예배가 끝났는지, 20명 정도 무리의 사람이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성당 일을 보시는 분이 1.3M 길이 촛대를 밖으로 나르고 있다.

비치된 독일 성경을 하나 빼들고, 마음 내키는 곳에 잠시 앉는다.
편안히 앉아, 생각을 한다.
엄마, 아빠가 떠오른다.
떠오른 엄마에게 말을 건넨다.
삐걱 거리는 여행이지만, 큰 사고 없이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 꺼라 짜라를 위로해 주신다.


한국에선 통행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아무 곳에나 오토바이를 새워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여기도 그런지 알 수가 없다.
특히 독일은 오토바이가 그리 흔하지 않다.
누가 새워 놨으면 따라 할 탠데, 그것도 구경 할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조심스럽게 아무데나 새운다.
그러다 처음으로 오토바이 주차장을 발견했다.
P라는 글자 밑으로 오토바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토바이 전용 주차장이 여기만 특별히 있는 건지 다른 곳에도 흔히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민박집에 묵는 동안 주차 문제를 물어봤는데, 오토바이에 관심이 없어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앞으로도 시원하게 답변해 줄 사람이 있을까?


[도이치 엑크]
라인 강을 바라보고 있는 신전이 있다.
신전 꼭대기엔 말을 탄 장군의 기마상이 있다.
오랜 세월동안 목욕을 못했는지, 청동색이 흙빛이 되었다.

처음으로 라인 강 가까이에 다가가 강물을 본다.
생각했던 것 보다, 물살이 무척 거세다.
수천 년 동안 흘렀을 라인 강에 빠른 물살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린다.

강을 따라 끈임 없이 배가 떠다닌다.
특히나 화물선이 많다.
이명박이 이걸 보면, 좋아라! 손뼉을 치겠구먼…….
혹시 이걸 보고 가서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건지도 모른다.


14:30
출발: Koblenz - Sankt. Goar (35KM)
장크트 고아르는 B9번 국도만 따라가면 된다.
B9번 국도가 책에서 보았던 고성가도인가?
아니면 라인 가도인가?
라인 강을 따라 뻗어 있는 산꼭대기에 고성들이 드문드문 있다.

라인 강에 굽이치는 강 허리를 두 번 돌면 장크트 고아르다.


15:30
강변을 따라 마을이 있고, 마을 마다 호텔들이 있다.
고아르엔 특히 호텔이 많다.
Hotel Hauser도 강변을 바라보고 있는 호텔 중 하나다.
강변에 있어 어렵지 앉게 바로 발견 한다.

짐을 풀고, 아침식사 시간을 정하고 밖으로 나온다.
원래는 숙박만 하려 했는데, 은근히 아침을 먹으라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하기로 한다.
가격도 29유로니 호텔치고는 싼 편이다.
물론 이름만 호텔이지, 우리나라 여관이랑 비슷하다.

강가로 나가 오른쪽으로 보니, 산 중턱에 새워진 성이 보인다.
독일 사람들은 산에 성 쌓기를 무척이나 즐기나 보다.
성이라면, 요새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성을 지었을 당시엔 외적의 침입이 무척 많았나보다.
아님 돈도 많고 폼도 잡아 보고 싶은 사람이 멋으로 지었을지도 모르지.

등 뒤로도 성이 보인다.
올라가 보기로 한다.
성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었다.
성의 역사가 적혀있는 벽보가 보인다.
폐허가 된 성을 사서, 호텔로 개조했다고 적은 듯하다.
대부분의 산 중턱 성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된다.
폐허로 방치되는 것보다는 이렇게 개조해서 사용하면, 보기도 좋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다.
하지만 왠지 모를 반발감이 들기도 한다.

나도 언젠가 이런 곳에서 자 보는 날 들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나이가 들어 저기서 자도 지금처럼 마음이 설렐지는 모르겠다.
그 때는 설레기보다, 지금에 기억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겠지?


성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와 식사준비를 한다.
평소처럼 간단히 먹을까 하다가, 오늘에 환상적인 여행을 기념해야겠기에 거하게 먹기로 한다.
여태껏 가방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있던 햇반, 카레, 컵라면을 펼쳐놓고, 전기보온병에 물을 끓인다.
햇반과 카레는 욕실의 뜨거운 물에 담가 대운다.
햇반은 뜨겁게 해야 맛이 있는데, 미지근한 물에 담갔다 빼니 찬 기운만 가셔서 밥맛이 별로다.
컵라면은 환상적인 맛이다.

내일 아침 8시에 독일 사람이 차려주는 독일식 아침식사가 있다.
뒤셀도르프에서 독일식 아침을 먹긴 했는데, 아마도 그것과는 또 다르리라 생각된다.
기대보단 우려가 크다. 하지만 뭐든 잘 먹는 짜라는 큰 걱정은 안는다.
탈만 나지 않는다면야 뭘 먹어도 맛있으리라.

시사 후 우롱차를 한잔 우리고 있자니, 잠이 몰려와 눈꺼풀을 당긴다.
두 모금 마시고, 잠깐 눈을 붙이기로 한다.
한 시간 후인 20:30 으로 알람을 맞춰 놓는다.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본다.
10:10

아차, 벌써 날이 밝았구나, 왜 여태 잤을까?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긴장을 풀었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준비를 하다, 창 박을 보고야 마음을 놓는다.
다행이 저녁 10시였다.
8시 반으로 맞춰 논 알람을 듣지 못한 것이다.

4일부터 후기를 정리하지 못했다.
5, 6일은 아예 내용도 적지 않았다.
밀린 후기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너무 자버렸다.
먼저 오늘 후기부터 쓰기로 한다.

항상 후기가 밀릴 땐, 가까운 날 부터 써나가는 것이 좋다.
밀린 날부터 쓰려고 하고 있으면,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쓰기가 어렵다.
그래서 오늘, 어제, 엊그제 순으로 써야, 하루 이틀정도 빠뜨리더라도 후기를 지속적으로 써나갈 수 있다.
모든 것을 완벽하려 하는 정신과에 암묵적인 타협점이다.


오늘 날짜의 후기를 적고 나니 벌써 01:30.
내일 일정잡고 11시 좀 넘어서 부터 썼으니 140분가량 쓴 샘이다.
오늘 일이 많긴 많았다.
어제 그제 이야기도 쓰고 싶지만, 그러면 날을 샐지도 모른다.
일단 자고, 아침 5시에 일어나 지난 일들을 더듬어 보기로 한다.


다행이도 일기예보가 틀려서 비가 오지 않았다.
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되어있었는데, 또 틀리면 안 된다.
내일여정은 100KM 정도는 오늘보단 덜 피곤하겠지.
Mainz에 들러 관광 후 점심 먹고 Frankfurt의 한인민박에 가서 모든 근심 걱정 털어버리고 하루 정도 푹 쉬어야 갰다.


작성: 2008/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