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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09/01/02 오지탐험: 스위스 몬트뤼

2009/01/02
오지탐험: 스위스 몬트뤼

제 3장 여행을 하는 이유?
유럽여행: 이탈리아 밀라노, 48일째

멕시코에서 일하시는 분은 아침부터 분주히 준비하시더니 6시 30분에 집을 나선다.
어제 놓친 비행기가 그에게 엄청난 경각심을 심어준 듯하다.
11시 비행기라고 한 것 같은데 4시간도 훨씬 전에 출발한걸 보니.


6:30
그분 덕분에 6시부터 30분을 뒤척이다 일어난다.
8:25 몬트뤼행 기차를 타야한다.
샤워를 하고 짐을 꾸린다.
여행 가방은 민박집에 맞기고 가기로 결정하고, 필수품만 챙겨서 배낭에 넣는다.
애초에 오토바이 여행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가방하나면 되었을 것을 생각이 든다.
그래도 20일 동안은 오토바이로 여행을 했으니, 가져온 보람은 있었다.


7:25
이모님께 부탁해 조금 일찍 아침을 먹고, 가방을 맡겨 놓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8:25 발 Montreux 행 열차가 전광판에 빠져 있다.
지난번 니스에서 밀라노행 기차 때문에 고생했던 악몽이 되살아나 안절부절 못하고 전광판을 응시한다.
8시가 넘었을 즘, 전광판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50대 부부에게 스위스행 기차는 어디서 타냐고 물어본다.
GENEVE 라고 적힌 녀석을 지목하며, 2번 탑승구로 가라고 한다.
나는 몬트뤼에 가는데, 제네바는 아니라고 말하니, 알아들을 수 없는 무슨 말을 몇 마디 하면서 또다시 제네바 2번 탑승구를 지목한다.
일단 고맙다고 하고, 고개를 갸웃 거리며 탑승구로 향한다.
가면서 생각을 해보니, 제네바가 종착역이고, 몬트뤼는 경유지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아까 알아듣지 못한 말이 그 말이었을 것이다.
12시 출발 표를 가지고 있어서 열차번호를 확인 할 수 없어 이런 일이 생겼다.
어제 8시 출발 기차를 확인할 때 상세한 열차 정보를 적어 놓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무사히 기차에 탄다.

열차 EC 에는 전원 플러그가 없다.
EuroStar만 전원 플러그가 있나보다.

12:25 발, 15:53 착 표를 예매했는데, 전 6시간 후 24시간 까지는 어느 열차를 타도된다고 한다.
Valido da 6H prima a 24H dopo
약 3시간 30분이 걸린다.
11:53 에 도착하겠지?

그동안 영화나 한편 봐야겠다.
기차로 여행하니 일기쓰기는 좋은 것 같다.
이동하는 동안 지난 일들을 떠올리며 글쓰기에 적절한 시간인 듯하다.


기차는 타고 가는데 어느 순간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산도 나무도 모두 하얗다.
아마도 스위스에 들어선 것 같다.
창가로 눈부신 햇살이 비쳐든다.
화창한 날이 될듯하다.


Milano - Montneux - Bex - Gryon

몬트뤼에 도착해 그리온행 기차표를 예매하고, 레만호를 구경하러 간다.
엄청 나게 넓은 호수는 바다 같아 보인다.
물맛을 보고 싶었지만, 물가로 내려가기가 용이하지 않아 그만둔다.

호숫가를 따라 산책을 한다.
호수 건너편으로 산이 보인다.
산은 안개에 쌓여 어렴풋 머리만 삐죽 내밀고 있다.

도시 쪽에서 흘러드는 물줄기가 호수와 만나는 곳에는 오리들과 기러기들이 가득 몰려 있다.
새들은 물 줄기가 만나는 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
프랑스 니스에서도 비슷한 장소에 새들이 모여 있었다.

오리들은 머리를 물속에 넣고, 엉덩이를 든 상태로 오리발을 살랑거려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뭔가 먹을게 있는 것일까?
깊숙한 곳에서는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가기도 한다.
엉덩이만 내밀고, 발을 살랑거리며 중심을 잡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호수는 조용하고 평온하다.
햇살은 따사롭고 강렬하다.

30분쯤 강가를 거닐다, 기차표를 확인했는데, 이런 뭔가 잘못되었다.
Gryon 이라고 말했는데, Glion 행 이라고 적혀있다.
발음이 거의 비슷해 잘못 끊어준 듯하다.
지나는 사람에게 같은 장소냐고 물어보니, Gryon 이 훨씬 먼 곳이라고 한다.
혹시나 해서 여행 안내소에 들어가 다시 물어보니, 다른 곳이라고 하며, Gryon 에 가는 기차시간을 확인해서 알려준다.

기차표를 바꿔주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 큰 문제없이 바꾸어준다.
왔던 길을 돌아 Bex 로 가서 산악 전철을 타고 Gryon에 간다.
Chalet Martin은 Gryon에서 그리 멀지 않고. 길목에 표지판도 서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5:30
리셉션은 5시에 오픈한다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호스텔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이 무척 많다.
거의 영어권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영어를 잘하면 어울릴 탠데, 아쉽다.
한국에 돌아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나?ㅋㅋ

나가서 동내 한 바퀴 돌며 구경이나 할까 하다 그만 둔다.
아직 침대가 배정되지 않아서 짐을 둘 곳이 애매하다.
가지고 가기도, 두고 가기도 불편해 그냥 기다리며 영화를 본다.

"Superman return"
2006년에 개봉했던 영화를 지금 본다.
요즘은 영화가 예전처럼 재밌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도 자꾸 보고 싶어진다. 왜 그럴까?
다른걸 하고 싶은데 할 게 없어서, 시간 때우기 용으로 보는 건가?
한국에 있었으면, 아마 책을 봤겠지만 여기는 책이 없다.
노트북에 담아온 책은 왠지 잘 봐지지 않는다.


리셉션이 열리고, 78 SFR(스위스 프랑)에 2학에 Snowboard 랜트를 한다.
리프트는 따로 끊어야 한다고 설명해 준다.
리포트 49 SFR 해서 총 127 SFR 이 든다.
약 80 유로 정도 드는 샘이다.

남자 여자 방을 따로 쓰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여자도 있다.
그 상황에서도 팬티만 입고 자는 남자가 있다.
이불이라도 잘 덥고 자던지, 이불은 반만 덮어서 다 보인다.
짜라역시 팬티만 입고 자는데, 이불 잘 덥고 자야겠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여행자도 넷 있는데, 그들도 영어를 썩 잘한다.
하지만 영어권 사람들과 어울리진 않는 것 같다.
함께 온 사람이 있으면 무척 좋을걸 그랬다.
카드놀이나, 보드게임이 여러 가지 구비되어 있는데, 혼자 할 수 없으니 그게 안타깝다.

내일은 사람들과 함께 모노폴리라도 한게임 해볼까?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게임이 잘될지 의문이다.
하긴 게임 할 때, 많은 말이 필요 없다.
돈 계산만 잘하면 될 테니까.
황금열쇠에 걸리면, 어쭙잖은 영어로 대충 해석해서 진행해도 별 무리는 없겠지?

말이 통하지 않아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분위기는 무척 좋다.
내일 보드 타보고 재밌으면, 하루 더 머물면서 보드를 더 타고 싶다.
사람들 많이 가는 인터라켄으로 갈걸 잘못했나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지금은 무척 만족스럽다.
마을도 너무 예쁘고, 호스텔도 예쁘고 아기자기 하고, 사람들도 편안하고, 짜라 기분도 좋다.

아침 일찍 일어나 보드 타러 가야지.


작성: 2009/01/02
편집: 2010/10/08


더하는 말

"2학에 SnowBoard 랜트를 한다."
2학에 보드를 랜트 한다라고 적었는데…….
"학"을 영어로 적으면 "GKR",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뭘 적으려다가 저런 오타를 냈을까?
한참을 궁리했지만, 알 수가 없다.ㅡㅡ;

글 속엔 여행의 설렘이 담겨있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다른 하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데, 인생도 이와 같을까?
그래서 더욱 설렌다.
기차를 놓쳐도, 잘못 타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의미 모를 미소를 얼굴에 드리워 줄 사람들만 있다면, 나름 즐겁고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다.
모든 상황을 긍정 할 수만 있다면 세상 어떤 일이 즐겁지 않을까?
행복은 누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닌 내 마음속에 있다.

철이 들어가는 건지,
나이를 먹어가는 건지,
인생을 알아가는 건지,
점점 개념을 상실해 가는 건지,
득도를 해 가는 건 아닌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냥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각의 흐름인지.


글을 읽으면서 레만호가 다시 생각난다.
아마도 찍어 놓은 사진이 있을 것이다.
사진을 찾아봤는데, 그날 찍은 사진들이 모두 깨져버렸다.
무슨 날벼락인가, 전날 찍은 것도, 그 다음날 찍은 것도 모두 무사한데 딱 그날만 없다.
다시 한 번 더 가보라는, 하늘의 장난인지도 모르겠다.
물장구치는 오리궁댕이 사진을 보고 싶었는데,
레만호 저쪽 끝에 수줍게 머리만 살짝 내민 산을 보고 싶었는데,
광활하고, 고요한 느낌의 바다 같은 호수를 다시 보고 싶었는데,
넓고, 큰 것 말고는 특별 할 것 없는 호수였는데,
그런데, 그래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 같다.
마치 기억 속 잃어버린 한 조각 같은 안타까운 상실감이다.


산 중턱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던 "차렛 마틴"의 모습도 어렴풋 떠오른다.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한 느낌이다.
어쩌면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동화 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