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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5 독서일기: 조사에 대해 생각하다

2009/03/25 짜라일기

독서일기: 조사에 대해 생각하다

바다의 기별 P. 150

한국어는 조사 하나에 의해 의견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가 바뀔 수 있습니다. 나는 조사를 안 좋아해요. 한국말의 조사는 나한테는 너무 어렵고 다루기가 힘들어요. 조사는 한 음절(one syllable)인데, 그게 몇 개 안 돼요. 대 여섯 개밖에 안 되는 이 한 움큼을 이리저리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가난한 살림을 사는 것입니다. 서양말은 조사가 없잖아요. 서양말에서 'I love you'라고 하면 동사가 목적어를 바로 지배해버리기 때문에, 동사와 목적어에 사이에 조사가 거치적거리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할 때 '는'과 '를'을 안 읽으면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어로 글을 읽는다는 것, 한국어로 사유를 한다는 것은 조사를 읽고, 조사를 경영한다는 것입니다. 조사를 읽지 않고는 한국말은 이해할 길이 없어요. 한국어의 모든 언어적 장치, 문법의 구조, 사유의 전개는 조사의 매개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우리말의 운명적인 특징이죠. 그러고 그 조사는 가난하고 매우 모호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조사의 모호함이 우리 모국어의 힘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호한 조사 안에 많은 자유의 여백이 있고, 많은 창조의 공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한테는 저런 모호한 것들이 어렵고 힘듭니다. 나는 지금도 조사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짜라는 이글을 읽으며, '조사의 재발견' 이란 제목을 달고 싶다.
부끄럽지만 이전엔 한 번도 조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한다면, '너나 잘하세요.'라고 했을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어느 잡지의 한 귀퉁이에서 발견했다면, 어느 외국인이 한국어를 두고 하는 불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이 두 문장을 두고 며칠을 고심했다는 김훈의 고백은, 짜라에게 더욱 처절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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