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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08/11/29 유럽여행: 백조의 호수

2008/11/29
유럽여행: 백조의 호수

짜라의 오토바이 유럽여행
14일째


민박집 근처에 호수가 하나있다.
점심 후에 호수에 나들이 다녀오겠다고 이야기 드리니까, 가거든 백조에게 빵을 주라고 한 봉지를 건네주신다.
가볍게 가려고 위생 봉투에 빵 세 조각만 담아서 안주머니에 넣는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1.5K 정도 걸어가면 되는 거리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걷다보니, 몸에 딱 붙는 운동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뛰어 다닌다.
호수로 가는 길 왼편에 축구장, 테니스장 같은 스포츠 시설이 많이 보였는데, 그쪽에서 운동 하는 사람들이 이 산책로로 몸 풀기 운동 겸 가볍게 뛰어 다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우리나라에는 대부분의 넓은 공원들이 대부분 산에 있다.
독일은 넓은 평지에 공원을 만들어 두었다.
키 큰 나무들이 숲길 좌우로 길게 늘어선 모습이, 무척 이색적이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숲길을 따라 천천히 20분가량 내려가니 호수를 볼 수 있었다.
오리 때가 꾁꾁 거리며, 가장자리에 모여 있다.
가까이가 사진을 찍고, 사진이 잘 나왔나, 보고 있는데, 이 녀석들이 겁도 없이 내 주위에 모여 든다.

여기 오리들은 사람에 대해 두려움이 없다. 한 발짝 가까이 까지 다가와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아마도 뭔가 바라는 것이 있는 눈치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 벤치가 보인다.
인단 밴치로 가 앉는다.
안주머니를 뒤져 빵이든 봉지를 꺼내었다.
오리들이 무리를 이루어 앞으로 다가 선다.
한참을 그렇게 쳐다보며, 예들이 뭘 하나 지켜본다.

빵 한 조각을 꺼내 조금씩 때서 던져준다.
서로 먹으려고 달려들어 난장판이 된다.
누군가의 입속으로 빵이 없어지면, 다시 일제히 시선을 나에게로 돌린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 무척 익숙한 것 같다.
갑자기 오리깡패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느낌이 들었다.
빵 내놓으라고, 겁을 주며 삥을 뜯어가는 생각이 든다.
한두 마리였으면, 속삭이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빵을 조금씩 때어 주었을 탠데, 30마리도 넘는 오리들이 저마다 꽉꽉, 꽥꽥 거리며 머기 활동에 열을 쏟으니, 조금은 살벌한 느낌도 든다.
어떤 녀석은 내 손가락을 물기도 한다.
물론 상처가 날정도로 아프게 물진 않았다.

그렇게 앉아 빵 새 조각을 다 던져주고,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관찰하고 있으니, 하나둘 호수로 돌아가 유유히 수영을 한다.
이쯤 되면 이미 이 녀석들은 알고 있나 부다.
더 이상 있어봐야 얻어먹을게 없다는 걸.

한 시간 가량 천천히 걸으며 호숫가를 돈다.
호수에는 오리도 많았지만, 백조도 무척 많았다.
백조가 이렇게 많은 줄 알았으면, 처음에 오리들에게 빵을 모두 주는 게 아니었는데, 잘못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백조들은 무척 우아하게 물위를 떠다녔다.
동작은 무척 천천히 했고, 물밑으로 발이 보였는데, 물장구도 천천히 그러면서도 힘 있게 한번 쭉 뒤로 뻗는 것이, 마치 사람이 평형할 때 발차기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호수 주위로도 가볍게 뛰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나를 스쳐 갔다.
자전거를 탄 10살 미만 어린이 들이 부모님과 함께 나들이 나왔다.

한번은 길가에 나와 있는 백조에게 살짝 다가가 사진을 찍었는데, 이 녀석이 도망은 가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한발 거리까지 다가와서는 큰 눈을 깜빡거린다.
긴 목을 앞뒤로 혹은 좌우로 움직이며, 동정을 살피는 듯하다.
빵이라도 줄줄 알고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모습인데, 안타깝게도 주머니엔 줄만한 것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빵을 전부 가져올걸 그랬다.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그 녀석을 외면한 채 걸어간다.
왠지 그 말 못하는 백조가 짜라 등 뒤에다 나쁜 녀석이라고 궁시랑 거릴 것만 같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을 도는 사람들 중에 머리카락 전부가 하얗게 눈이 내린 할머니도 있었다.
저렇게 늙은 연세에도 자전거를 타시는 분을 한국에선 본적이 없는데, 여기는 어르신들도 저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 같다.

다리를 건널 때 짜라 옆으로 자전거 하나가 지나갔다.
자전거 뒤에는 조그만 짐차 한 칸이 달려있었다.
뭔가 하고 자세히 보니, 그것은 작은 마차 같은 것이었는데, 그 속엔 조그맣고 귀여운 아기 두 명이 타고 있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저런 것도 있구나 하고, 한참 멀어질 때 까지 지켜본다.


한국에서 e-mail 이 왔는데, IPTV STB 테스트를 부탁 하고 있다.
한국, 중국, 베트남에 있는 서버들을 하나씩 테스트 해본다.
기본적으로 한국으로 가입자가 설정되어 있어, 가입자 정보를 바꿔 가면 테스트 해 보았는데, 다 동아시아에 있는 국가들이라 그런지 서버의 변화에 동영상 재생 상태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민박집 아들 이름은 사무엘이다.
사무엘은 일주일에 한번 혹은 두 번씩 첼로 연습을 한다.
배운지 약 10년 가까이 됐나부다.
온지 6일쯤 되었는데, 처음으로 사무엘의 첼로 소리를 들어본다.
음률이 무척 아름답다.
중간에 첼로의 저음역부터 고음역까지 단계적으로 올려가며, 몇 번을 오르락 내리락을 한다.
가끔 소리가 떨리거나 이상한 소리가 나긴 하는데, 전체적으로 안정된 소리가 난다.
귀에 익숙한 첼로 곡을 몇 곡 연습한다.
음악에 대해 그리 아는 게 많지 않아 깊이까진 모르겠지만,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확실하다.
짜라도 덩달아 첼로나 한번 배워 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ㅋㅋ
그전에 대금부터 연습해야한다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이놈에 욕심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숙불숙 고계를 든다.



근심 걱정이 많은 가운데의 하루이다.
하지만 근심 걱정은 털어버렸다.
마음을 비우고 그냥 인생을 즐기자 마음먹으니 편안하고 한국의 우리 집에 와 있는 느낌이다.
민박에 죽치고 않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조금은 미안하다,
나름 미안함을 달랠 겸, 아저씨에게 이것저것 컴퓨터 관련 여러 가지를 알려 드린다.
아저씨가 그런걸 좋아 하셔서 '다행이다' 여겨진다.


인생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하루가 이렇게 흘러간다.
월요일엔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아님 또 다른 문제가 생겨 짜라를 곤란하게 만들까?
평생을 큰돈 한번 써 보지 않고, 구두쇠처럼 살아 왔다.
물론 그렇게 생각해 본적은 없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끼며 살아온 인생이다.
아마도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
아버님이 무척 근검절약 하셨기에, 그런 모습을 실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지금에 내 모습 속에서 그 때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형성된 사람의 습관은 쉬 바뀌거나 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도 있겠지.
맞는 말이다.

허나, 짜라는 항상 그런 틀에서 벗어나려 애 쓰며 살아간다.
그것이 잘못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단지 변화를 받아드리고 더욱 새로운 삶을 후회 없이 살려는 욕망이 크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짜라의 천성인지도 모른다.
사회의 저항과 사람들의 곱지 않는 눈빛들을 받으면서도 결코 포기 하지 않는 짜라의 의지다.
그 의지가 진정 옳은지 그른지 의심이 들어 흔들릴 때도 있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인생에 정답 이란 건 정확히 없는 것 같다.
다만 틀리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
틀리지 않은 것은 하나가 아니기에, 정답이 하나가 아닌 것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이, 틀린 길이 아니기만 바랄 뿐이다.


작성: 2008/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