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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08/11/30 유럽여행: 밤길과 두려움, 백조의 호수

2008/11/30
유럽여행: 밤길과 두려움, 백조의 호수

짜라의 오토바이 유럽여행
15일째

길가에 어둠이 깔렸다.
잠시 망설이다, 길을 나선다.
어제 남겨두었던 빵 조각을 전부 가져간다.

저 멀리로 마지막 남은 햇살이 나무숲 뒤로 보인다.
호수에 다가갈수록 어둠은 더욱 짙어져, 도착 했을 땐 이미 밤이 되었다.

여기서 호수를 따라 한 바퀴 돌려면 서둘러도 4~50분은 걸릴 것이다.
가로등도 없는 길을 돌까 망설인다.
앞쪽 호수 가장자리에 오리와 백조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가져온 빵만 주고 가야겠다.' 생각을 정한다.

한쪽 가장자리에 나루터 같이 생긴 장소로 올라가 빵조각들을 조금씩 때어 새들에게 준다.
오리들은 백조에 비해 동작이 재빠르다.
백조에게 준 큰 빵조각은 잠깐 백조 입에 물려 있다가 성격 급한 오리에게 빼앗겨 버렸다.
부리나케 도망가는 오리는 물위를 뛰어다니는 듯 날아간다.

백조들은 상대적으로 동작이 느려, 대부분의 빵들을 오리에게 내어 주어야 했다.
측은한 마음에 가까이 있는 백조에게 빵조각을 입 가까이 가져다준다.

이미 어둠이 사면을 에워싸 버려 새들의 윤곽만 보인다.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는다.
새들은 플래시를 실어하는지 조금씩 거리를 둔다.
3장정도 찍으니, 좌우로 흩어져 간다.

잠시 후 지나던 아저씨 한분이 말을 건다.
친절하게 다가서서는 무어라 말하는데, 대략 플래시를 사용하면 새들에게 해롭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여 준다.
몇 번을 더 당부하고는 가던 길로 돌아간다.
새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것 같다.
그렇게 아껴주니까, 새들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지도 모른다.


짙은 밤을 헤집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둠이 내려앉은 독일의 밤거리는 고요하다.

어둠을 응시하고 있다 보니,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둠은 사람의 마음속에 두려움을 자라나게 한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할 때.
대학교 입학할 때.
회사에 면접 볼 때.
항상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면 두려움이 생긴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답답해지기도 하며, 때로는 호흡이 가빠오고 몸이 떨리기도 한다.
사람의 신체는 특정 상황에 대비해, 몸의 기능을 조절하는 화학물질(호르몬 등)들을 분비한다.
공포심을 느낄 때 3가지 정도의 호르몬을 분비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아드레날린이다.
이것이 몸에 퍼지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동공이 확장되며, 피부의 미세한 감각 기관들이 극도로 긴장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주위 환경의 아주 사소한 변화까지도 빨리 지각하고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칼 세이건의 '에덴의 용'에 나온 내용이다.

이런 극도의 긴장감이 장시간 지속되면, 그 피로감으로 인해 몸이 떨리거나 오한을 느껴지고 생각이 둔해진다.

마음속에 공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몸은 많은 일들을 수행 하며, 최종적으로는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이것 때문에 맹수로 부터 잡혀 먹지 않는 특혜를 얻을 수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가 여기까지 왔는지 까먹었다.

두려움은 짜라가 살면서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는 녀석이다.
특히 초중고에 입학할 때의 두려움은 좀 더 자극적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다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
왜 진작 그 녀석들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두 번째 부터는 그놈의 정채를 알아보고 좀 더 의연하게 대처 할 수 있지 않았는가?

두려움이란 공포심을 짜라는 외면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 두려움이 사라질 즘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치부해, 외면해 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잘못된 습관인 것이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녀석의 성격과 특성 등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그 녀석에 대해 잘 알게 되면, 다음부턴 그 녀석을 무서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친근하게 녀석과 어울려 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몇 번의 맞닥뜨림으로 회사 면접을 볼 때쯤엔 두려움에 대한 공포의 크기는 상당히 작아 졌다.
하지만 그때, 여전히 그 공포의 실체를 명확히 깨닫지 못했었다.

지금 어둠이 덮인 호수의 숲길을 걸으며, 어둠의 두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햇볕이 깔린 숲길과 어둠이 깔린 숲길의 차이는 무엇인가?
왜 어둠은 내 마음속에서 공포를 길러 내는가?
저 어둠 속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가?
영혼, 사람, 동물, 혹은 차원을 초원한 알 수 없는 무엇.
어둠속에 흐릿하게 보이는 저 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 것은 시시각각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져 가기도 한다.
화살의 방향을 바꾼 질문들은 짜라를 그 본질에 더욱 가까이, 객관적으로 다가가 진지하게 관찰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두운 숲속에서 뱀 한 마리가 나타나 내 다리를 감고 올라와 나를 물어 버릴 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생을 마감 할 것이다.
허나, 짜라는 그런 모든 가능성들을 배제시킨다.
그렇게 되어 지금 이 순간이 생에 마지막이 될지라도, 배제시키기로 한다.


그러고 나면 공포는 세 발짝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은 아니다.
머리는 공포를 밀어 내었지만, 몸은 아직 그러지 못했다.
몸은 아직도 어둠속에 도사릴지 모를 무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두려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놈에 정채를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언젠가는 그 녀석을 친구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성: 2008/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