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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08/11/24 유럽여행: 쾰른을 떠돌다

2008/11/24
도시 쾰른을 떠돌다

아침 8시 반.
이모님이 차려주신 맛있는 아침식사를 먹었다.
반찬이 10가지도 넘는 것 같다.
식사 후에 향이 은은한 블랙커피 한잔도 내주신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짜라가 일주일 동안 여행하며, 겪었던 일들을 간략히 설명했다.
거의가 다 오토바이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오토바이로 옮겨가고, 쾰른 시내의 오토바이 매장 아는 곳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주위 상점 목록이 들어있는 책자를 뒤적여 몇 곳에 손수 전화를 해주시고, 중고 오토바이를 파는지 여부도 물어 봤다.

대부분 새 제품만 취급하고 중고 제품은 취급하지 않는 것 같다.
한곳에서 중고도 판다고 하는데, 가격을 3000 유로 정도 불렀다.
1000유로 정도 가격대는 없냐고 물어보니, 귀찮은 듯 직접 와 보라고 한다.
직접 간다고 비싼 가격이 떨어질 리야 만무하지만은 그래도 뾰족한 수가 없으므로 가보기로 했다.

일단 독일 바이크 가게 '모토라더' 두 곳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하고 집을 나선다.
독일은 20개 정도 노선의 전철이 다닌다.
전철은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차들과 함께 도로 위를 달린다.
전철들도 차와 마찬가지로 신호를 받아서 움직인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모든 경험이 처음인 짜라에겐 전철 타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어제 몇 번 타보아서 그나마 조금 익숙해 졌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복잡하게 꼬인 코스들을 찾아다니느라, 어디서 타는지 몰라 한참 해매기도 한다.

첫 번째 찾아간 곳은 13호선 악헤너 스트라제(Aachener Str.) 역 근처다.
야마하라고 적힌 큰 간판이 서있다.
점원에게 게브락테스 모토라더(중고 오토바이)가 있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지, 발음을 조금씩 바꿔가며 몇 번을 다시 물어봐도 살며시 고개를 저을 뿐이다.
가게 문을 나서려다 말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민박집으로 전화해 이모님께 대략 질문 거리들을 알려 드리고, 점원과 대화해 보도록 부탁 드렸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를 돌려받았는데, 이모님 말이 중고 제품이 있긴 한데 3500 유로 밑으론 없다고 한다.
전화상으론 3000유로라 이야기 하더니, 막상 가니까 500유로 더 올려서 부른다.
더 싼 건 없냐고 물어보니 직접 와 보라고 하더니, 더 싼 건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도대체 여기 까기 오게 한 이유가 뭔지 암튼 무척 나쁜 심보를 가진 가게다.


두 번째 가게는 18호선 바바로자 플라츠(Barbarossaplatz) 역 근처다.
반갑게도 가게 앞에 중고 오토바이 두 대가 전시되어 있다.
밝은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연다.
들어가 몇 마디 해보니, 그전 가게 점원보다 더욱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결국 민박집에 또 전화해 대신 물어보기를 부탁 드렸다.

여기는 새것만 판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고 전문점을 한곳 소개시켜 주셨다.
바이크 잡지 같은걸 펼쳐 보이면서, 그곳으로 가 보라고 했다.
어떻게 찾아 가냐고 물어보니, 지도를 꺼내서 주소 위치랑 맞춰 본다.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자기일 처럼 성의를 보여주셔서 고마운 마음에 쌩큐를 찐하게 던진다.

전철로 이동하는 방법을 민박집에 물어서 4호선 오이제레 카날스트라제(Aussere Kanalstr.)로 간다.
모토라더 피터 쿱(MOTORRADER PETER KAUP) 주소(Vogelsanger str. 350)를 보여주며 10명 가까운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어렵게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쿱 상점은 규모가 엄청 커 무슨 공장에 온 느낌이 들었다.
좌우로 오토바이들이 비스듬히 줄지어 새 주인이 찾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대략 2~300대의 오토바이들이 전시된듯하고, 더 안쪽에는 오토바이 부품들이 가득히 잘 정리되어 쌓여 있다.



금빛과 회색빛이 섞인 굵은 곱슬머리에 훤칠한 키를 가진 아저씨에게 원하는 오토바이 스펙을 이야기 하고, 찾아주기를 부탁한다.
가격대 500 ~ 1000 유로, 250 ~ 500 CC 사이 오토바이가 몇 대 있다.
혼다 CB400N 을 선택
첫인상은 무척 겸손하게 생긴 놈이다. 좀 심심하게 생겼다 해야 할까?
오토바이 600 유로
뒤쪽 짐받이, 좌우 사이드 백 까지 해서 총 700유로에 계약한다.
옵션이 좀 비싼 듯한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지쳐서 흥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오토바이는 이틀 후 26일에 인도 된다고 한다.
오토바이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을 한 후, 기계적인 하자 여부를 승인 받아야 한다고 했다.

계약금 50유로를 걸고, 계약서를 받아들고 나선다.
날아갈 듯 한 기분이다.


여행 9일째에 드디어 오토바이를 사게 되었다.
여행을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걱정의 연속이었다.
이제야 첫 단추를 자기자리에 끼운 기분이다.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어 속이 상했지만, 내일 모래면 오토바이를 탈수 있는 것이다.
콧노래를 낮게 흥얼거린다. 영화 once 에서 들었던 그 노래다.

내일은 민박집에서 밀린 일기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일정들을 다시 잡아야겠다.


3군대 모토라더 가게를 들르는 동안 민박집에 10통화도 넘게 전화를 해 설명을 부탁 드렸다.
세 번째 통화 이후부터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말이 안 통하니 염치 불구하고 계속해서 부탁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뭔가 사례를 하고 싶어 돌아가는 길에 값나가는 와인 한 병과 안주거리 과자 한 보지를 사가지고 집으로 향한다.


아저씨께 고맙다는 말과 함께 와인 한잔을 권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다.
크리스천이라 술을 많이 드시지 않나보다.
그냥 예의상 한잔 따라서 분위기만 맞춰 주신다.
고마운 마음을 표하려 한 건데, 이것 참 짜라는 아직도 사람들과 소통에 서툰 것 같다.


힘들고 고단한 여행이 될 거라 예상은 했다.
어떤 영화의 광고 카피처럼,
무었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된다더니…….
지금 짜라의 여행이 꼭 그러하다.
어려운 여행을 야무진 마음으로 출발 했지만, 감당하기 힘든 고난들이 연속해 닥쳐온다.

여행의 중도에 선 짜라는 이런 어려움들을 수없이 겪으며, 좌절 하면서, 이것이 진짜 인생이며, 이것 또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선 안정된 상태로 비교적 예측 가능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고 있었다면,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예측 불허의 나날들의 연속이다.

60년이란 인생을 사는 동안, 이런 어려운 환경에 빠져보고, 이겨내는, 여행이라는 삶을 경험해 보는 것이 무척 좋겠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에게 권해 주고 싶다.

어려움을 격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의 크기를 알 수 없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해도 직접 피부로 느끼고 검험하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더니…….
사극에서 인사치레로 '덕분에 안목을 크게 넓혔습니다.'라는 대사가 자주 나온다.
짜라 생각에 여행은 안목을 크게 넓혀 주는 것 같다.
사람이란 동물은 생명, 사물, 현상 등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대로 본다.
그래서 처음 보는 것은 쉽게 기억하지 못하고, 이미 알고 있고 익숙한 것들은 쉽게 오래도록 기억 한다.
이해의 수준도 그러하다.

여행은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려 노력하도록 만들어 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하므로, 그렇게 하도록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편집: 2008/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