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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08/12/11 유럽여행: 무전여행, 바쁘긴 한데 실속이 없다

2008/12/11
유럽여행: 무전여행, 바쁘긴 한데 실속이 없다

짜라의 오토바이 유럽여행
독일 프랑크푸르트, 26일째

아침식사 후 뤼데스하임에 갈 계획을 한다.
민박 손님 중에 자동차로 로렐라이언덕에 가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차를 태워 주겠다고 한다.
어제 드디어 GPS도 구했겠다, 시운전 겸 오토바이로 이동하려 했기 때문에 정중히 거절을 한다.
헌데, 다시 생각해보니 혹시 눈이 내려 길이 안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프랑크푸르트는 예보와 상관없이 눈이 오지 않았지만, 다른 지역은 다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크트고아르 가는 길에 내려 달라고 부탁한다.


뤼데스하임은 아주 작은 마을이다.
3K도 안 되는 지역이 마을의 전부이다.
주민들도 많지 않다고 한다.
길거리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대체로 중년, 노년 부부들이 관광객의 주를 이룬다.
느낌에 미국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여행 온지 처음으로 Tourist Information 을 찾았다.
관광지도를 받아, 지도에 표시된 장소들을 하나씩 찍으면서 다닌다.
1시간이면 충분이 다 보고 다닐 수 있다.
이곳도 크리스마스 장이 섰다.
왁자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마인츠, 프랑크푸르트의 분위기와는 조금 다르다.
일단 사람들의 숫자가 무척 적다.
여기 주민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뭘 좀 먹을까, 주머니를 뒤져본다.
아차, 여권과 돈이든 복대를 차고오지 않았다.
아침에 민박손님과 동행해 나오느라 서두른 게 화근이다.
지갑과 주머니에 든 돈을 모두 합하니, 23유로정도 있다.

비스바덴에서 온천욕 하려던 계획은 물 건너 가버렸다.
책에 나온 가격이 17유론데, 책에 나온 대부분의 안내 가격이 3~50% 정도 인상되었으니, 여기도 최소 20유로는 받을 듯하다.

갑자기 무전여행을 나온 느낌이 든다.
이전엔 무전여행하면 무전기를 들고 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다.
돈 없이 다닌다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지금 그 상황에 처해보고 나니 이게 무전여행이구나 하고 절실히 느껴진다.

역으로가 기차시간과 가격을 알아본다.
12:55, 14:55 - 9.7유로
50분 뒤에 차가 있고 아니면, 두 시간을 더 기다려 다음차를 타야 한다.
차비 제하고 나면 10유로 남짓 남는데, 그 돈으로 글뤼바인 한 잔에 소시지에 과자 하나 사먹으면 끝일 테니, 3시간씩 있기는 부담스럽다.

남는 시간동안 라인 강변을 따라 거닐기로 한다.
독일에는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오리가 있는 듯하다.
라인 강을 여러 번 보았지만, 오리가 있는 건 보지 못한 것 같은데, 한가롭게 강을 거닐고 있노라니, 오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오리들이 보이나보다.
가방을 뒤져 빵을 꺼낸다.
가방 속에 3일 동안 있었던 빵은 하얀 곰팡이 같은 게 끼었다.
새들에겐 큰 위험이 되지 않겠지 생각하며, 한 조각씩 던져준다.

오리 한마리가 짜라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는데, 일순간 주위에 있던 오리들이 몰려들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오리들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
20마리는 넘는 것 같다.
그리고 좀 지나자, 이번엔 기러기들이 날아들었다.
던지는 빵을 공중에서 낚아채려고 노리는 것 같다.
강물에 떨어진 빵에도 달려든다.
지난번 쾰른에 백조의 호수에서도 느꼈지만, 역시나 먹고사는 일은 장난이 아니다.
새들은 빵 한 조각을 위해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투쟁일까? 아니면 그냥 한때의 유희를 즐기는 걸까?

빵을 차지한 새는 다른 새들과 거리를 두려고 멀리 달아나고, 다른 새들은 먹이를 문 그 새를 뒤쫓는다.
어떤 오리는 빵을 못 먹은 게 분통이 터지는지 옆에 있는 다른 오리들의 목과 날개를 쪼아대기도 한다.


그렇게 강을 천천히 거닐었는데, 그래도 시간이 30분가량 남았다.
다시 마을로 들어가 여기서 가장 인기 있는 상점가로 간다.
마을을 빙 둘러서 크리스마스 장이 서있어서, 라인 강 도로변을 따라서도 임시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이것저것 눈에 뛰는 것을 구경하며 지나간다.
나무로 만든 오토바이 모양도 보인다.
하나 살까 생각한다.
하루도 되기 전에 다 부서져 버릴 거라 생각이 들어, 그냥 사진으로 담아온다.

유명한 골목길에 들어서 조금 가다가 보니 시가니 10분 남았다.
이것저것 눈이 끌리는 곳에 정신을 팔았더니, 시간이 금방 가버렸다.
빨리 서둘러 역으로 뛰어간다.
배낭을 메고 뛴다.
잠깐만 뛰었는데도 힘들다.
체력이 떨어진 건지, 원래부터 이렇게 저질 체력인지 아무튼 숨 가쁘게 뛰다 걷다를 해 겨우 시간에 맞춰 표를 사고 기차에 오른다.


기차 안은 비교적 따듯하다.
프랑크푸르트까지는 얼핏 보기에 두 시간이 걸린다고 적혀 있었다.
나중에 보니 1시간 조금 더 걸린 것 같다.
도착할 때 까지, 언어공부를 할까 아님 내일 계획을 세울까 생각을 한다.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냥 창밖을 바라본다.
라인 강을 따라 기차가 달린다.
10분쯤 후에 스르르 잠이 밀려온다.
익숙하기 않은 기차 여행에 혹시나 목적지를 지나칠까 걱정이 되지만, 잠에는 이길 장사가 없다.
결국 스르르 잠이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한다.

잠깐 졸다 눈을 떴는데, 기차가 이상하다.
분명 내가 앉은 방향으로 기차가 달리고 있었는데, 어느 사이 이놈이 역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설마 벌써 프랑크푸르트 찍고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닐까?
시간은 30분쯤 지났기에 그런 가능성은 적다고 자위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그마한 불안에 불덩이가 일렁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노트북에 GPS 를 연결해 내비게이션 프로그램으로 위치를 확인해 본다.
다행이 점점 프랑크푸르트로 다가가고 있다.

도착하고 보니, 프랑크푸르트가 종착역이다.
그냥 편히 자고 있어도 되었을 것을…….


민박집에 다시 들러, 가방을 가볍게 하고 밖으로 나온다.
비스바덴의 유명한 온천엔 결국 못 가게 되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가까운 곳에 있다는 온천 사우나에라도 가봐야겠다.

GPS 시운전을 무사히 마치고 rebstockbad 온천에 도착했다.
사우나 건물은 일본식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마도 주인이 일본사람 인가보다.


민박집 아저씨가 준 정보는 그곳에 싸우나 건물이 있다는 것만 맞을 뿐 다른 건 다 맞지 않다.
입장료는 두 배나 비싼 8유로고, 온천이 아닌 그냥 사우나다.
그리고 수영장이 딸려 있었다.
진작 알았으면 수영복을 가져왔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그리고 사우나를 하기위해선 준비물이 필요하다.
몸을 감을 수 있는 큰 수건과 욕실용 센들.
없어도 문제는 안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두 가지를 준비해 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짜라는 수건 하나를 가져왔는데, 그나마 그거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건물 내부에서 옷을 벗고 싸우나 가운이나, 큰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다닌다.
그 수건조차 없었으면, 혼자 빨개 벗고 다녀야 했을 것이다.
물론 몇몇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들이 누드로 다니시긴 한다.
그런데 그 사우나에는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있다.
여간 민망한 게 아니다.
여자들이 거의 없긴 하지만, 몇몇이 몸을 누일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마도 목적이 싸우나가 아닌 남자 구경인 듯하다.

혼자만 작은 수건으로 간신히 중요한 부분을 가리고 다니니, 눈에 뛸 만도 하다.
그래도 8유로나 내고 들어왔는데, 사우나는 제대로 하고 가야지.
여기저기 시설들을 둘러보고, 하나씩 이용해 본다.
한국의 찜질방이나 싸우나 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내부 장식은 완전한건 아니지만 일본풍이다.
사람들 중에는 삼각 수영복을 입은 사람도 있다.
수영복을 가져왔으면 편할걸 그랬다.


90분 동안 사우나를 마치고, 프랑크푸르트 도시의 쇼핑거리 zail로 간다.
민박 아저씨 부탁으로 스위칭 허브와 랜카드를 사기 위해서다.
시내교동이 무척 혼잡하다.
시간을 좀 아끼려 했는데, 오히려 민박집 앞에 바이크를 새우고 걸어가는 게 더 빠를걸 그랬다.
saturn(자툰) 3층 전자제품 매장으로 가서 어렵지 않게, 허브와 랜카드를 고른다.
여기는 네트워크장비 이름이 다르다.
공유기 Router
스위칭허브 Network Switch

아차차, 아침처럼 또 돈을 가져 나오지 않았다.
아까 민박집에 잠깐 들렀었는데, 챙겼어야 하는데…….
결국 제품을 만져만 보고, 원래 자리에 다시 놓는다.


18:30
30분 뒤에 오페라가 시작된다.
마음이 급하다.
오늘 네트워크 부품을 사려고 마음먹었는데, 결국 내일로 미룬다.
내일 남쪽으로 내려갈까 생각도 했었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어져 버렸다.

민박집 아저씨, 아줌마에게 사정만 이야기 하고 Oper Frankfurt 로 향한다.
오페라 건물 내부엔 사람들이 많다.
어제 예약한 가장 저렴하지만 그래도 볼만한 자리로 간다.
COSI FAN TUTTE
모차르트 오페라다.
연기자들의 말은 라틴어인지 이탈리어인지 모르겠다.
자막은 독일어로 표시된다.
그 무엇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 조금 지루하고 잠도 온다.

그래도 오케스트라 연주가 듣기에 좋다.
그리고 다섯 곡정도 여자 연기자들이 독창을 했다.
아름답다.

오페라를 생각한다.
사람들이 여행가면 오페라는 꼭 보라고 했다.
일단 가격이 싸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매력적이라고 했다.
짜라 기억에 한번 내지 두 번 정도 오페라를 본 것 같다.
사실 그때 본 그것이 오페라 였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오페라를 떠올리면 왠지 공부를 좀 해야 할 것 같고, 세련되고 폼도 나고 교양도 있어 보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짜라가 오늘 느끼고 경험한 오페라는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함께 호흡하고 웃고 떠들고 즐기는 그런 분위기였다.
뭔가 배우려거나, 진지하거나, 폼 잡는 사람도 없다.
영화, 드라마, 연극, 뮤지컬 등과 같은 하나의 즐길 거리 오락거리인 것이다.
사람들이 즐거워 보인다.

오페라가 끝나고 연기자들이 하나둘 무대를 가득히 메운다.
박수가 쏟아진다.
박수소리는 끊이지 않고, 새로운 사람들이 나올 때 마다 처음 열기 그대로 열렬하다.
짜라는 박수치는 도중에 나가는 무리를 따라 밖으로 나선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도 박수소리는 여전하다.
거의 10분 동안 박수소리를 들은 것 같다.
짜라가 오페라 건물에서 멀어질 때까지 그 박수소리는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치는 박수의 숫자만큼 그들은 행복하고, 즐겁고, 감동적인 시간이었겠지?


민박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11시가 다됐다.
몇몇이 깨어있을 뿐 대부분 잠자리에 들었다.
컵라면이라도 먹고 자려고 했는데, 이모님이 벌써 잠자리에 든듯하다.
평소보다 다들 일찍 잠들어, 짜라는 주린 배를 우롱차래 달래기로 한다.
삐거덕 거리는 하루가 또 이렇게 저물어 간다.

내일은 여유가 생겼으니 천천히 생각들 정리도 하고 밀린 숙제도 마무리 지어야 갰다.
처음엔 여행하는 동안 기행문 같은 책을 써볼까 생각을 했는데, 시가니 지나면 지날수록 자신이 없어진다.
매일매일을 기록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 기록한 날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명이나 상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작성: 2008/12/11